김은정 KIM Eun Jeong, 너랑 같이 The Bunny against Fear, 2025,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3.4x21.2cm. [사진=학고재] "하나도 두려울 게 없다. "
그림 속 아이는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작은 손에 애착 인형을 꽉 붙잡은 채, 나머지 한 손은 하늘을 향해 앞뒤로 힘차게 흔든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전진하는 아이는 그 순간 누구보다 위풍당당하다.
학고재는 오는 11월 8일까지 김은정의 개인전 ‘말, 그림’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일상과 자연, 관계를 담은 회화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비둘기, 따오기, 백로, 한강, 고래상어, 친구, 바둑판 등 김은정이 써내려간 작가 노트 겸 일기 속 이미지들이 캔버스 위로 옮겨졌다.
김은정은 이번 작품들이 “이동과 여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제 주변에서 본 것들을 통해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 그림들은 정체성, 서식지, 관계와 관련한 내용이 많아요. 날씨 등 환경적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일산 가는 길에 우연히 본 눈덩이같은 백로떼, 비온 뒤 신나게 뛰는 고라니, 애착 인형을 쥐고 달리는 친구의 아이, 을지로 인쇄소 아저씨들의 바둑 등 그의 일상은 자연과 만나 캔버스로 옮겨졌다.
김은정 KIM Eun Jeong, 부리 물고기 뿌리 Beak Fish Root, 2024, 나무에 배접된 종이에 유채,한지 Oil on paper mounted on wood, Hanji, 182x350.4cm. [사진=학고재] 매일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여는 그에게 이동은 ‘숨통’이다. 서울에 살던 시절엔 답답할 때면 달려나가 서강대교를 건너며 물을 바라봤다. 하지만 오늘날 이동은 때때로 서식지의 파괴로 이어진다. 김은정은 백로를 보면 를 그렸다. “백로가 너무 많이 몰려오니까 나무를 베어버린다고 하더군요. 자연의 질서라는 걸,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김은정 KIM Eun Jeong, 고래 나무 물사슴 Whale Tree Gorani, 2025,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59.1x387.8cm. [사진=학고재] 작품 에는 작가의 바람이 투영됐다. 고라니의 또 다른 이름은 물사슴(Water deer)이다. 현재 천안의 작업실에서 거주하는 작가는 자신의 이동길에서 죽은 고라니들을 자주 봤다. 그러던 중 100년 만에 폭우가 온 날, 작업실 뒷산에 생긴 작은 폭포에서 신나게 뛰노는 고라니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물이 힘차게 흘러내리는 공간에서 이 친구들이 뛸 수 있으면 좋겠다. "
결국엔 함께하는 삶, 관계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주요 작품들인 , , 는 캔버스가 분리된 동시에 연결의 장으로 펼쳐진다. 하나의 이미지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다른 조각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확장된다.
이는 작가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이어진다. 나누어진 화면은 "세계를 한눈에 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김은정 KIM Eun Jeong, 여름 산책 Summer Stroll, 2025,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3.4x19cm.[사진=학고재] 아주경제=윤주혜 기자 jujusun@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