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중수청이 실험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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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중수청이 실험용인가
중대범죄수사청의 행정안전부 설치론은 검찰이 법무부를 통해 중수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해 수사 기소 분리 원칙을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관점으로 추진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설치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개혁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실험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중수청 설치에서 최우선적 고려사항은 그것이 형사사법의 이념에 기여할 것인지 여부가 되어야 한다. 검찰권 분산과 견제는 그 수단으로 고려될 수 있을 뿐, 독립적인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중수청은 형사사법의 2대 이념인 실체진실의 발견과 적정절차의 보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창온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첫째, 실체진실 발견 이념이 제고되도록 수사 전문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로 사용된 소환 조사와 조서는 현대화된 범죄역량 대응에는 한계에 달하였으며 수사역량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수사는 공소를 제기, 유지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범인을 발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이므로 공소제기와 유지 목적을 도외시한 수사 전문성은 있을 수 없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론이 근거로 드는 영미법계 국가도 중대범죄 수사 분야에서 검사와 수사관의 조직적 통합을 통해 양 측면의 전문성을 통합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무부 산하의 연방수사국(FBI)이나 영국 법무부 산하의 중대비리수사청(SFO) 등이 단적인 예다. 중수청 행안부 설치론자들이 특검이나 공수처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의 통합을 수용한다는 점도 그 필요성을 방증한다.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자는 주장의 실질적 함의는 1차 단계의 기소 결정권을 비사법기구인 행정기관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중수청을 행안부에 두면, 범죄 성립과 기소 필요성의 1차 판단권을 형사사법 전문조직이 아닌 치안행정 전문조직인 행안부나 중수청에게 부여하게 된다. 행안부나 중수청이 허용하지 않으면 공소제기와 재판단계로 이행될 수 없다. 이는 공소제기와 유지 결정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의 본질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범죄예방과 진압을 주된 임무로 하는 행안부나 경찰의 전문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적정절차의 이념이 구현되어야 한다. 검사는 법률가일 뿐 법 집행 전문가가 아님에도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는 수사단계 법 집행 권한을 검사에게 귀속시킨다. 이는 수사만으로도 시민에게 형벌에 상응할 정도의 중대한 침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준사법관인 검사의 의사결정을 현장 수사관보다 우선시킴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수백 년간 근대국가의 형사 절차는 경찰권력을 견제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근대 형사사법사를 조망할 때, 형사 절차의 변함없는 핵심과제는 방대한 인적, 물적 자원과 기술적 전문성을 갖춘 중앙집권적 경찰권력을 어떻게 사법적으로 제한하고 견제할 것인가에 있었다.

현재 검찰의 과도한 직접수사가 문제라 하여 이를 행안부 산하 중수청에 전면 이관하고, 중수청에 대한 사법적, 민주적 통제를 최소화한다면, 머지않아 검사권력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위험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는 근대 형사사법사의 흐름을 거슬러 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창온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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