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연료’ 꺼낸 李, 동맹 현대화·핵기술 주권 강화 노려 [2025 경주 에이펙-한·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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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 연료’ 꺼낸 李, 동맹 현대화·핵기술 주권 강화 노려 [2025 경주 에이펙-한·미 정상회담]
원자력 협정 문제 언급 배경 핵 잠수함 건조 기술력 갖춘 韓 고농축 핵연료 안정적 확보 관건 국내서 우라늄 농축 땐 수입비 절감 사용후핵연료도 재활용 길 열려 K원전도 ‘저비용 고효율’ 날개 바이든 정부 땐 핵잠 허용 부정적 美, 11월 SCM서 재논의 가능성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안보 분야 의제 중 하나로 거론됐던 한·미 원자력협정 문제는 군사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면,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하겠다”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 부분에 대해 실질적 협의가 진척되도록 지시해주시면 더 빠른 속도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해 군사력을 증강,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경감하는 동맹 현대화와 핵 기술 주권 강화를 함께 노린 것이라는 평가다.
의장대 사열하는 韓·美 정상 이재명 대통령과 국빈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경주=남정탁 기자 ◆핵추진잠수함 건조, 키는 미국에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해선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가 기술 수준이며, 둘째는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다. 마지막으로 국가적 의지다.

기술 수준과 국가적 의지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한국은 1990년대부터 장보고급·손원일급·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을 꾸준히 건조하면서 기술을 축적하고 잠수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이와 별도로 한국은 2000년대 이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여러 차례 추진해왔다. 노무현정부 초기인 2003년 군 당국은 4000t급 핵잠수함 3척 건조를 검토했으나, 초기 단계에서 노출되어 좌초됐다. 문재인정부도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관련, 핵연료 확보 등의 사안을 비공식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도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남은 문제는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다. 핵추진잠수함이 수명주기(30년 이상) 동안 핵연료 교체 없이 운용되려면, 농축도 93∼97%의 고농축우라늄(HEU)이 필요하다. 농축률이 높아야 소량의 연료로도 오랜 기간 큰 출력을 낼 수 있다. 서방에서 잠수함용 핵연료 공급이 가능한 곳은 미국 외에 일부 유럽국가가 꼽힌다. 농축률 90% 이상의 핵연료는 핵폭탄 제조로 이어질 수 있어 높은 수준의 글로벌 통제가 뒤따른다. 미국 정부가 허용하지 않으면, 해외에서 핵연료를 확보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내 제조도 문제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11조의 ‘우라늄 235 동위원소가 오직 20% 미만인 경우에 한하여 농축될 수 있다’와 13조의 ‘군사적 이용 금지’ 등의 제약을 해소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원자력협정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한·미 협력 범위와 권리·의무 등을 규정한 것으로, 2035년까지 한국은 미국의 사전 동의하에 우라늄을 20% 미만까지 농축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미국이 승인해야 가능하다. 농축도 20% 안팎의 핵연료도 잠수함에 쓸 수 있으나, 5∼10년 주기로 핵연료를 재장전해야 하므로 실제 운용에 제약이 따른다. 고성능 핵추진잠수함 확보의 핵심 요소를 미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수용 여부는 미지수다. 다음달 4일 한·미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릴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핵추진잠수함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은 있다. 다만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이었던 지난해 6월 로이드 오스틴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는 것과 핵 확산에 대한 미국 내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에 큰 변화가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뉴시스 ◆핵 기술 주권·경제적 이익 노려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영역에서 한국이 더 많은 권한을 지니는 문제는 한·미 간에 원자력협정 개정과 맞물려 논의가 이뤄졌던 사안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 “원자력 쪽 문제는 의미 있는 진전이 있어서 우리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영역에서 지금보다 많은 권한을 갖는 방향으로 하기로 얘기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우리의 역량에 비춰 지속적인 제약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요구를 지속해서 해 왔고, 그에 대해 (미국 측의) 긍정적 반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된다면, 한국(K) 원전 산업계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대하면 국내 생산을 통해 수입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우라늄 수입액은 13억4000만달러에 달한다. 핵연료 재처리 권한이 커지면 사용 후 핵연료를 원전 연료로 재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부담도 줄어든다. ‘저비용 고효율’을 자랑하는 K원전의 강점도 극대화돼 수출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을 개발해 자체 핵연료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찬·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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