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29일 관세협상을 극적 타결한 것은 협상이 더는 지연돼서는 안 된다는 양국 간 공감대가 마련된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서 미·중, 미·일 관세협상을 포함해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이고, 특히 중국과의 관세협상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관세협상이 장기화하는 것이 부담이 된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협상 대치 상황을 일정 부분 타개할 것으로 알려진 만큼 한국과의 관세협상 타결을 통해 순방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관세협상 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과의 관세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중국과의 협상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에 앞서 일본에 방문해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협상을 마무리하고, 투자 기한·절차·이익 배분 방식을 미국에 유리하게 타결한 상황에서 협상을 장기화하는 것이 작지 않은 부담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협상 타결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협상 타결 후 브리핑에서 자세한 협상 과정은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전날 저녁만 해도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았고 당일에 급진전됐다고만 밝히겠다”고 설명한 것처럼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날 관세협상은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시작 직전까지 회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 협상’으로 진행됐다. 통상 관세협상 등이 실무 차원에서 협상안을 마련하고, 정상 간 최종 타결로 이어지는 ‘보텀업’ 방식이라면, 이날 협상은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난항을 겪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굿즈 전시품을 관람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특히 이재명정부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기조에 따라 미국의 대미 투자 방식에 응할 경우 외환시장 충격 등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강력 전달한 것이 협상 타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최근 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 국익 우선, 상호 호혜적인 협상을 할 것이고, 시간에 쫓겨 불리한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관세협상에서 ‘상업적 합리성’ 확보를 강조하고, 미국 정부도 투자 분야 세부 협상에서 일정 부분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며 협상이 타결됐다.
이 대통령이 안보 분야에서는 미국 정부의 ‘동맹 현대화’ 요구에 적극 호응하면서 관세협상 타결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주국방 강화를 강조하고 전시 작전권 전환 입장을 일관되게 밝힌 만큼 국방비 증액 등을 통해 한국의 국방 능력을 강화하고, 한·미 군사 안보 동맹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블룸버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요구가 반드시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이 스스로 충분히 방위할 수 있도록, 자주국방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으로 방위비를 올려야 된다는 게 저나 우리 새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며 “3.5% 선까지 국방비를 증액하자는 기본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주=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