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에서 열린 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세협상을 극적 타결했다. 관세협상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한국 정부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경우, 미국의 현금 투자 요구에 따라 2000억달러는 현금 투자하는 대신, 연간 최대 200억달러 한도로 장기 분할 투자하는 선에서 절충안을 찾았다. 다만 이날 협상 타결에 따른 자동차를 포함한 대미 관세율 인하는 한국 의회 입법과 미국 정부 내 일정 절차 등을 거쳐야 해 실제 관세 인하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87분간의 정상회담을 하고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세부내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과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리더스 만찬에 참석, “한국과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많은 걸 결정할 수 있는 생산적인 회의였다”며 “관세협정도 거의 최종 단계까지 갔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실장은 협정 세부내용과 관련, “대미 금융투자 3500억달러는 현금 2000억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로, 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금융패키지와 유사하다”면서 “다만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달러로 설정해, 2000억달러를 한 번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고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달러로 투자해서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하는 범위에서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매년 최대한도인 20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하면 10년간 분할 투자를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출자금을 한꺼번에 납입하지 않고 일정 한도 내에서 필요할 때마다 출자 요구에 응하는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이다. 조선업 협력 분야 1500억달러 규모의 투자는 우리 기업이 주도로 추진하고, 기업 투자와 보증도 포함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신규 선박 건조 도입 시 장기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선박 금융도 포함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위한 후속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반도와 역내 평화 안정을 위한 한·미 동맹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탈냉전 시대 급격히 변화하는 역내 안보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비 증대와 함께 핵추진잠수함 도입 문제를 논의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북한의 핵잠수함 건조 등 여건 변화에 따라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데 공감을 표하면서 후속 협의를 해나가자고 했다고 위 실장은 전했다.
위 실장은 또 이 대통령이 한반도의 긴장 완화 및 ‘중단·축소·폐기’를 통한 비핵화 추진 의지를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상황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며 “북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동맹이 억지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경주=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