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젊은 날에는
좋은 시인이 되고 싶어 몇 번이고
술 마시고 취해서 땅에 쓰러졌다.
바른 길 외치다가 감방에도 갔다.
종국에는 온몸에 상처만 쌓이고
나라를 멀리 떠나 외로워져서야
나그네가 된 나에게 네가 다가왔다.
어두워 몸부림쳐도 외면만 하고
동반자 하나도 허용하지 않던 길,
그늘에 가려 추운 대답을 기다리면
그제야 눈길만 몇 개 보내주었지
그 갈증, 그 부끄러움 속에서 살았다.
천지가 가물거리는 나이에 와도
느린 발걸음의 길은 멀기만 한데
헐벗은 몸에서만 꽃이 핀다니
나이도 잊고 상처도 잊어야겠지.
시를 찾겠다고 입술을 깨물던 내 피가
혹시 보였니, 끈질긴 불면도 보였니?
고통만이 고통을 치유한다고 했지.
회복의 기미는 어디에도 없고
헤매던 불구의 혼을 감추고
모두 떠난 먼 길에 다시 나서리라.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문학과지성사) 수록
●마종기
△1939년 도쿄 출생.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 발표 시작. 시집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등 발표.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먼 길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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