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한·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마지막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계기 양자·다자외교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은 에이펙 의장국의 역할에 집중하는 동시에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 등 굵직한 양자회담 일정을 연이어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쳐 한·미 관세협상 합의 등 외교적 성과를 냈다. 취임한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안방에서 열린 글로벌 외교 행사를 ‘실용주의’와 ‘강대국 간 가교 역할’을 토대로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미·중 갈등과 더불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의 충돌 우려, 대미 투자 패키지 이행 과정에서의 한·미 이견 발생 가능성 등 대외적으로 관리해야 할 과제들 역시 산적해 있다. 에이펙에서의 상견례를 넘어 미국, 중국, 일본을 상대로 각종 현안에서 국익을 실현해내기 위해 ‘실용외교 심화 단계’로 발 빠르게 나아가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중·일과 원만한 마무리 지난달 27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순방을 마치자마자 에이펙 외교 준비에 돌입한 이 대통령은 이번 에이펙 정상회의 기간 내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양자 외교에 공을 들였다. 하이라이트는 이른바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러시아를 제외한 미·중·일과의 양자회담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이 마주한 최대 시험대였다. 합의안 발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대미 관세협상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양자 외교에서의 성과를 높였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직접 ‘핵추진잠수함’을 의제로 꺼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안보와 관련한 숙원 해결에 한 발 다가섰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0월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도 ‘셔틀 외교’를 지속하기로 합의하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언급에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 관계를 미래 지향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을 위해 유익하다”고 화답했다. 전날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정치적 신뢰를 확보하고, 민간 차원에서도 우호적 신뢰 축적을 병행해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 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본무대’인 에이펙 정상회의에서 미·중의 치열한 대립에도 ‘경주 선언’을 조율해냈다. 양자·다자외교 모두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형 속에서도 작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수 여전… ‘실용외교’ 심화 단계로 에이펙 기간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는 작지 않은 성과를 이뤘지만, 여전히 미·중·일을 상대로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경주 에이펙 기간 미·중 갈등이 일시 휴전에 접어들었지만, 추후 갈등이 다시 격화할 경우 중국이 한국을 향해 ‘어느 편이냐’고 묻는 압박을 노골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역시 다카이치 총리가 자국 내 지지 기반을 의식한 강경 행보를 재개한다면 양국 간 과거사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협력의 걸림돌로 재부상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연쇄 정상외교를 계기로 마련한 실용외교의 기본 틀 안에서 돌발 변수들을 면밀히 관리하고, 무게 중심을 찾아 균형을 잡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극적 타결된 관세협상 관련해 양해각서(MOU)와 양국이 발표하는 보도자료 성격의 ‘조인트 팩트시트’ 완성까지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미 정부가 공히 밝혀왔듯이 막판 문구 조율 과정에서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복 목도리 착용하고… 정상들 기념촬영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에 참석한 회원국 정상 및 대표들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목에 두른 옥색 한복 목도리에는 나비를 모티브로 한 에이펙 공식 엠블럼을 새겼다. 경주=남정탁 기자 이 대통령이 요청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도입을 승인한다고 밝힌 한국 핵추진잠수함 도입 문제도 구체적 논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도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진 기자, 경주=박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