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주도한 주한 日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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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주도한 주한 日 특파원”
권영석 작가, 고종 왕비 시해 사건 소설화 당시 日특파원 종범 아닌 공범 역할 강조 술 취한 왕·권력욕 왕비 옛날이야기 아냐
조선 고종의 왕비 민씨(민자영)은 한국 근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사리사욕에 눈멀어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권력투쟁을 벌이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려는 쪽에서는 민비(閔妃), 거꾸로 난세에 외교술을 발휘해 국운을 개척하려 했다는 긍정적 측면을 주장하는 편에서는 명성황후라 불린다. 작가는 민비도 아니고 명성황후도 아닌 ‘중전 민씨’라는 표현으로 역사의 균형을 추구한다.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작가 권영석. 올해는 서울 경복궁에서 민씨가 일제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은 을미사변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가 늙은 여우(老狐)라 부른 민씨 시해 실행 계획에서 이름을 딴 ‘작전명 여우사냥’은 1895년 10월 1일부터 사건이 있었던 10월 8일까지 조선의 심장 경복궁과 일제의 침략 사령부 일본공사관(현재 서울 중구 예장동)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숨 막히는 일주일을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현장감 있게 복원했다.

조선의 심장에는 오늘날 대통령 경호실 격인 시위대(侍衛隊)의 제2대대장 이명재가 있다. 그는 민씨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면서도 민씨의 부패를 혐오하고, 정권 수호의 방패이면서도 1894년 갑오농민혁명이 외세와 수구 세력에 의해 실패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민씨가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선의 변화는 조선인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신념에 민씨를 구하기 위해 일전을 마다치 않는다. 1895년과 2025년 한반도의 고민이 관통하는 것이다.

그 대척 점엔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安達謙?)가 있다. ‘여우사냥’의 주도자이자 실행자로 그려지는 아다치는 실존 인물이다. 일본공사관 지원으로 한성신보를 창간한 뒤 일제의 조선침략을 정당화하는 선전 활동을 했고, 을미사변에도 참가해 우리와는 악연이다. 조선에서의 활약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호도 한성(漢城)으로 지었다. 후에 체신상, 내무상을 지냈다.

작품은 아다치와 함께 그동안 을미사변의 조역으로 인식되던 한성신보의 일본 특파기자들의 역할을 일본공사관과 함께 과감히 공동주연으로 설정했다. 소설을 넘어 국익이라는 미명아래 조선침략의 선봉이 됐던 일본 매체 종사자들의 활동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더 많이 밝혀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의 특파원들은 을미사변의 종범(從犯)이 아니라 공동정범( 正犯)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술에 취한 왕(고종)과 권력욕이 집착하는 왕비는 최근 한국 정치 상황과 맞물려 의미하는 바가 크다.

소설의 모티브는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작가와 일본 특파원과의 만남이었다. 작가 권영석은 “한성신보의 일본 특파원들이 중전 민씨의 암살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몸서리쳤다”고 말했다.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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