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경제·안보 분야 협상 결과를 담은 공동 설명자료 격인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차 한·미 정상회담 직후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수일 내에 팩트시트 발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열흘 넘게 발표가 지연되면서 한·미가 또다시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관세 분야의 협상은 마무리됐고 안보 분야 협상이 일부 조정 중이라고 밝혔는데, 우리 정부가 요청한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도입 문제를 둘러싸고 막판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개최된 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공개 요청한 원잠 도입과 관련해 정부는 원잠 선체를 한국에서 건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미국은 이후 협상 과정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잠 원료인 농축 우라늄 확보에서도 우라늄 농축도와 그에 따른 원잠 성능 문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사안까지 얽히면서 논의가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팩트시트 도출을 위한 속도전 대신 실익에 초점을 맞춘 신중한 접근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흐름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국방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9일 KBS에 출연, 원잠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의견 조율이 안 되면서 팩트시트가 안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당초는 지난주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이 잠수함 건조 문제가 대두되면서 미국 정부 각 부처에 조율이 되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면서 “아마 금명간 나올 거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미국 국무부, 상무부, 에너지부 여러 각 부처가 유기적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의견 조율로 이렇게 거의 완성 단계에 와있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 장관은 원잠 건조를 한국에서 한다는 문구가 팩트시트에 포함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원잠을 한국에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필리조선소는 그런 시설, 설비가 미비하고 우리 국내의 기술 또 설비 이런 것들이 이미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하는 것이 여러 가지 합리적 조건에 부합하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인터뷰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원잠 도입 추진과 관련해 “그냥 지원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국방부는 추후 공지를 통해 “‘국내 건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측의 전반적인 지원 의사를 설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잠 건조 세부 사안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해군 핵추진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CVN-73)이 지난 5일 오전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길이 333m, 폭 78m, 배수량 10만여t, 승조원 6000여명에 달하는 조지워싱턴함은 항공기 80여대를 탑재하고 있다. 부산=뉴스1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팩트시트 발표 시점과 관련, “안보 분야에서 일부 조정이 필요해 얘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는 새 이슈에 대한 조정도 대체로 마친 상태인데, 미국에서 문건을 검토하면서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발표 시점에 대해서는 “언제가 될지 특정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언급했다. 원잠 연료인 우라늄 농축도도 쟁점 사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원잠 추진 원료를 요청했으나, 미국은 약 95%의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절차 등에서 간극이 있고, 20% 이하 저농축 우라늄의 경우 연료 교체 주기를 포함한 성능 문제도 고려 사항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원잠 규모와 관련해 “(미국이 보유한 대형 원잠인)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경우 핵무장을 한 채 대양을 가로지르는 잠수함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렇게 클 필요는 없으며, 한국의 수요에 맞는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경우 90% 농축 우라늄을 쓰지만, 한국에서 만드는 원잠의 경우 20% 이하 농축 우라늄을 쓰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박영준·박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