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600만달러의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기억할 것이다. 미국 정부에서 600만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해 만들어낸 초능력 인간이 첩보원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줄거리다. 지난주, 그러니까 반세기 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테슬라가 창립자 겸 총수 일론 머스크에게 1조달러 규모의 보상 패키지를 통과시켰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비교 대상이다. 당시의 600만달러나 지금의 1조달러나 보통 사람이 상식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수치임이 틀림없다. 1조는 1이라는 숫자 뒤에 0이 12개 붙는다. 한화로 환산한다면 0이 15개로 늘어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세지 않으면 1조인지 1000억인지 헷갈릴 터다. 1조달러는 1970년 12월 21일 0시 6분에 미국 국내총생산이 사상 최초로 도달한 액수다. 1987년이 되면 미국 정부 예산이나 세계 개발도상국 부채가 1조달러를 넘어서며, 불과 7년 전 2018년이 돼서야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대기업의 시가총액이 이 수준에 도달했다.
국가나 기업 같은 집단이 아니라 한 개인의 소득으로 1조달러를 운운한다는 사실은 2025년의 세상이 얼마나 초현실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2024년 GDP 규모가 1조달러 정도인 나라는 네덜란드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8500만명의 터키인이 한 해에 버는 돈을 머스크가 혼자 몇 년에 벌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천문학적 규모의 돈에 대해 교황 레오 14세는 도덕적인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부유함만이 유일한 가치라면 큰 문제”라며 말이다. 미국의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또한 수많은 사람이 빈곤에 허덕이는 마당에 엄청난 규모의 소득은 추잡하다고 비난했다. 종교적 관점에서 돈의 숭배를 비판하고 정치에서 진보 진영이 사회 불평등을 꼬집는 일은 예측 가능한 반응이다.
보다 심각한 비판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당사자들로부터 솟구치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머스크 보상에 대해 기업이 너무 한 인물에 의존하는 일은 위험하다며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미국의 기관투자자서비스(ISS)나 캘리포니아 교사연금, 뉴욕 공무원연금 등도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며 반대했다. 장기적 시각으로 자본의 경제적 가치를 보호하려는 투자기관들은 이번 사안에 대거 반대한 셈이다.
순수 금융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번 결정은 실현 가능한 업적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라기보다 머스크가 주주들을 협박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식 35%를 보유하는 개인투자자들은 보상안이 부결되어 머스크가 테슬라에서 손을 떼면 당장 주가가 곤두박질할 것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현재 주가를 실제 5~8배까지 늘려준다면 1조달러 정도를 머스크에 줘도 무방하다는 투기적 인식도 한몫했을 터다.
정치권력을 움켜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공화주의 전통이나 민주적 제도를 마구 휘저어 놓듯, 경제 권력을 상징하는 머스크가 자아도취에 빠져 자본주의와 시장 제도를 붕괴시키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와 머스크는 각각 정치와 경제에서 미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병리적 측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화신이라 할 수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