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 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의 창간 20주년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개인적인 성과는 필요없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강한 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단단한 고리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다. ”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 축구사에 길이남을 리베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1969년생, 당시 21세의 수비수는 유망주를 넘어 이미 대표팀 핵심 수비수로 자리잡았고, 본선 3경기 모두 교체없이 풀타임 출전했다. 당시 3전 전패로 고배를 마셨지만, 이후 긴 세월 든든하게 그라운드를 지켰다.
아시아 선수 최초 월드컵 본선 4회 출전과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등 이정표를 세웠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4강 신화에 공헌했다. 손흥민(LAFC)이 깨뜨리기 전까지 차범근 전 감독과 함께 한국 남자 선수 A매치 최다 출전 기록 1위(136경기) 역시 그의 몫이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해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동메달이라는 기적을 일궈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이렇게 불렀다. ‘등번호 20번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등번호 20번의 홍 감독을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만났다.
이제 7개월 앞으로 다가온 2026 북중미 월드컵으로 모든 시선이 쏠린다. 그 중심에 홍 감독이 있다. 지난해 7월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하기 위해 10년 만에 사령탑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어깨가 무겁다. 홍 감독은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감독의 책임”이라며 “항상 머릿속에 그 생각을 가지고 감독 생활을 해왔다”고 말했다.
◆축구의 시작, 최고의 수비수로
시작은 공놀이였다. 꼬마 홍명보는 점심시간이면 동네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공부도 꽤 잘했던 소년이었다. 특히 할머니의 반대가 컸다. 집안의 2대 독자였던 손자가 힘든 운동을 택하길 원치 않았다. 긴 설득,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홍 감독은 “운동을 시작할 때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부터 수비수는 아니었다. 고려대 2학년 때까지 윙포워드, 미드필더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당시 남대식 고려대 감독은 홍 감독에게 최종 수비수, 즉 스위퍼를 지시했다. 신의 한 수였다. 곧장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까지 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았다. 미드필더 시절 몸에 익힌 롱킥과 패스 능력까지 더해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홍 감독은 “결과적으로 그때 포지션을 바꾼 덕분에 잘될 수 있었다”고 웃었다.
현역 시절의 홍명보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의 상징, 등 번호 ‘20’
홍명보 하면 빠질 수 없는 상징, 숫자 ‘20’이다. 14년 동안 대표팀에서 등에 20번만 달고 뛰었다.
사실 20번을 달게 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대표팀에 처음 선발된 1990년 1월 진해 선수촌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대표팀 막내급이었던 홍 감독은 남는 번호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대표팀 막내, 그리고 당시만 해도 공격수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수비수에게 등번호를 선택할 수 있을리는 만무했다. 무심하게 20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골라잡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했던가. 홍 감독의 성장, 등번호 20번의 가치가 비례했다. 한국 축구에 없어서는 안 될 수비수로 성장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홍 감독이 달려온 발자취, 등번호 20번은 이제는 한국 축구 수비수를 상징하는 숫자가 됐다. 최근에는 권경원(FC안양), 이한범(미트윌란) 등이 달았다.
홍 감독은 “처음에는 20번에 대한 의미나 상징이 전혀 없었다. 그 당시에는 10번이나 11번 등 공격수 번호가 의미 있었다”며 “(연습경기에서) 가끔 다른 번호를 달고 뛸 때는 뭔가 어색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도 가끔 아마추어 축구를 보러 가면 수비수 중에 20번을 단 선수가 있다. 그걸 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며 “특정 선수의 번호라기보다 정말 팀을 위해 헌신하고 잘 이끌어갈 선수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두 번째 월드컵, 명예 회복보다 팀의 성공
홍 감독에게 북중미 월드컵은 사령탑으로 두 번째 도전이자 7번째 무대다. 감독에 앞서 선수로 4회, 코치로 1회, 그리고 감독으로 1회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기억, 바로 감독으로 나섰던 2014 브라질 월드컵이다. 진심으로 한국 축구만 생각했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홍 감독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였다. 오해가 쌓였고 비난이 됐다. 변명하지 않았고 해명하지 않았다. 홍 감독의 성격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큰 상처, 아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 치유했다. 운명의 장난일까. 또 한 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고사하고 또 고사했다. 홍 감독을 움직인 것을 무엇이었을까.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달라’는 한 마디였다.
홍 감독과 친한 지인들은 만류했다. 지금 걷고 있는 꽃길을 버리고, 또 불구덩이로 들어가느냐고. 하지만 홍 감독의 머릿속은 이미 하나밖에 없었다. ‘한국 축구를 위해’
예상은 했지만, 시작부터 암초였다.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한국 축구와 월드컵 본선 무대만 바라봤다. 온갖 잡음과 논란 속에서 대표팀이 나아가야 할 길만 생각했다. 그렇게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지난 9월부터 강호들과 매달 모의고사를 치르며 전력을 가다듬고 있다.
홍 감독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프로팀 감독을 하는 등 여러 경험을 많이 했다. 준비 기간도 더 길어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지금 대표팀 선수들과 1년 넘게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7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다. 남은 기간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홍명보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원팀을 위해
온 힘을 집중한다.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빠르게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손흥민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핵심 자원을 중심으로 이강인(PSG), 오현규(헹크), 엄지성(스완지시티),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 등 2000년대생 젊은 자원들이 효과적으로 팀에 녹아들고 있다.
홍 감독은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라면서도 “몇몇 선수들만 가지고 팀이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선수들, 특히 스타 플레이어들의 헌신 등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뒤에 있는 선수들도 따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수들에게도 그 부분을 많이 강조한다”고 힘줘 말했다.
축구 팬들에게는 응원의 말을 당부했다. 지난달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는 2만2206명의 관중만 경기장을 찾았다. 홍 감독은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목소리라고 생각이 든다”며 “지금 제 역할은 우리 선수들이 그로 인해 자신감을 잃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담담하게 남은 기간 준비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홍 감독은 “제 개인의 성과를 위해 월드컵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며 “한국이 월드컵에서 더 강한 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단단한 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축구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 늘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눈빛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