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호의플랫폼정부] AI정부의 성공, 사람과 조직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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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호의플랫폼정부] AI정부의 성공, 사람과 조직에 달렸다
혁신의 출발점은 일하는 방식의 전환 절차·규정 중심의 관료문화 개선돼야
행정안전부가 또다시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 정부에서 신설된 디지털정부혁신실을 인공지능정부실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윤호중 장관이 밝힌 부처 개편 방향은 단순한 조직 조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인공지능(AI) 정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라는 조직 전체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과제에 맞춘 조직 개편이 반복돼 온 우리 행정 현실에서 이번에도 같은 길을 답습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AI 정부는 대국민 서비스 창구에 챗봇을 설치하거나 문서를 자동 분류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혁신은 백오피스, 즉 정책이 기획되고 집행되는 정부의 내부에서 일어나야 한다.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덧씌워도 산업화시대 관료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디지털 껍데기만 덮은 아날로그 정부로 남게 된다.

역대 정부의 혁신이 한정된 성과에 그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중심의 행정 혁신은 반복됐지만, 절차와 규정 중심의 관료문화를 깨지 못했다. AI 정부 전환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술보다 사람과 조직의 변화가 먼저여야 한다. 이번 행안부 개편에 포함된 참여혁신국 신설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기술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는 산업계에서도 많다. 이른바 생산성 역설로 알려진 현상으로, 1980년대 컴퓨터가 급속히 보급됐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정보기술이 실질적 성과를 냈다. 단순히 컴퓨터의 도입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조직구조를 IT 환경에 맞도록 바꾸면서 기업들이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AI 기술을 도입했다고 갑자기 AI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전자정부의 명성을 이어가고 싶다면,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의 혁신이 핵심이 돼야 한다. 부처별 칸막이를 없애고 정부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Whole-of-Government)처럼 움직이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처 간 데이터 표준화를 서두르고, 협업 우선 원칙을 세워 각 부처의 핵심성과지표(KPI)에 협업 지표를 반영하여 인센티브를 주도록 성과 평가를 개선해야 한다.

에스토니아의 ‘단 한 번만(Once Only)’ 원칙은 시민이 한 번 제출한 정보를 다른 기관이 재사용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이는 기관 간 협업을 법적으로 강제한 것으로,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기술보다 협업과 제도 설계가 혁신의 본질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의 정부는 실험과 학습이 가능한 조직이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실험 우선(Experimentation First)’ 정책을 도입해 공무원의 파일럿(Pilot) 시도를 장려하고 실패를 불이익이 아닌 학습의 기회로 본다. 최대 자유는 최대 책임이라는 넷플릭스의 원칙도 공공조직에 적용할 수 있다. 자율과 책임이 함께할 때 창의적 행정이 가능하다.

AI 정부의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이며, 그 성공은 사고방식의 변화에 달려 있다. 자기 조직의 화석화된 문화와 경직된 일하는 방식조차 바꾸지 못하는 정부는 어떤 첨단기술을 도입해도 혁신할 수 없다. 윤 장관이 강조한 ‘참여·연대·혁신’의 가치가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 스스로 AI 시대에 맞는 일하는 철학을 세워야 한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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