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거행됐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가 계기였지만 양국 정상은 상견례를 겸한 첫 대면을 통해 ‘양자 관계 복원’을 시도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올해로 수교 33년을 맞은 양국 관계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교 당시 북한이라는 특수 요인을 안고 출발한 양국 관계의 선천적 한계로 인해 여전히 한반도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접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2016년 7월, 고도화된 북핵으로부터의 위협 방어를 위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은 자국 핵심 이익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한국과의 교류를 제한하는 소위 한한령(限韓令)으로 응수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이사이 한국의 대중 정서는 급격히 악화하였고, 중국에도 혐한(嫌韓) 정서가 나타나는 등 정서적 후유증이 상당하다. 그동안 한국의 대미 경사(傾斜)와 한·미·일 3각 공조 저지에 애써왔던 중국은 이재명정부가 ‘한·미 동맹에 기반한 실용 외교’를 강조하고 나서자 당황하는 기미가 역력해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이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 탈피를 주장하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에 대한 승인을 얻어내자, 중국 측의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양국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관계 설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 주석도 누차에 걸쳐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임을 강조해왔고, 이 대통령도 중국과의 관계 확대 발전을 강조하는 실용외교를 피력해 왔다. 민생 부문을 중심으로 한 7개 협력의향서 채택도 그 일환이다. 물론 한·중 간에는 한·미 동맹 구조와 한·중 협력 구조의 차별성과 더불어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에 심화하는 미·중 전략경쟁 구도 역시 한·중 협력 구조를 제약하는 요인임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를 반영하듯 양국은 의제 설정부터 난항을 겪었다. 한국은 중국 정상의 방한이라는 호재를 이용하여 경제협력 활성화 및 희토류를 포함한 공급망 협력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북한 ‘비핵화’나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 한한령 문제 등 현안을 주 의제로 설정했다. 반면, 중국은 구조적 현안은 피하려는 자세가 역력했고, 경제협력 및 문화 교류 활성화 외에는 기존의 원론적 입장만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의 회담 내용 발표에 ‘한반도’ 관련 문제가 빠져 있는 것이 이를 잘 드러낸다.
한국 대통령 안보실은 ‘한·중 관계의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복원’이 어느 정도를 뜻하는 것인지 여전히 애매하다. 사드 사태 이전으로는 복귀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공감 형성 없이 ‘완전한 복원’을 말하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희망컨대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나 ‘상호 국민 정서’, ‘한한령’ 같은 양자적 성격이 강한 문제에 대해서 일정한 상호 이해가 형성됐길 바란다.
구조적 문제는 일시에 해결이 불가하지만 적어도 경제나 문화적 측면에서는 양국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공동의 현안이 많다. 특히 경제협력 측면에서 양국이 상호의존 구조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면서, 보다 균형 잡힌 경제협력 모델을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5년 경주 에이펙 정상회의가 제시한 협력 축, 즉 무역·투자, 디지털 혁신·인공지능 및 기술 전환, 인구구조 변화, 문화산업, 공급망 연계, 지속가능성, 다자협력, 포용적 통합 등은 한·중 협력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한국 입장을 한·미 관계의 부속물이나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3각 공조의 방편으로 간주하거나, 한·중 관계에 북한이라는 특수 요인이 존재함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한국의 ‘핵심 이익’ 수호를 위해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