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숙의이매진] 누군가의 독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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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이매진] 누군가의 독서리스트
며칠 전 집에 방문하기로 한 도시가스 안전 진단 점검원이 생각난다. 마트에 다녀오다가 조금 늦게 되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서둘러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그분은 계단참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신선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해서 안전 진단이 끝나고 잠깐 말을 붙여 보았다. 그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읽는 재미가 크다며 우리 집 여기저기에 위태로이 쌓여 있는 책을 잠깐 넘겨다봤다.

한 문학 작법서에서 읽은 내용인데,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한 우범지역의 시장은 인구가 이백만이 넘는 우범지역을 잘 관리할 경찰관들은 보다 좋은 시민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경찰관들에게 필독 도서 목록을 제시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돈키호테’와 ‘백 년 동안의 고독’,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 옥타비오 파스의 ‘고독의 미로’ 등이고 이외에도 생텍쥐페리, 애거사 크리스티,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작품도 포함됐다.

이 목록을 받아 든 경찰청장은 세 가지 정도의 측면에서 독서가 경찰관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광범위한 어휘 습득이고, 두 번째는 대리 경험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윤리적 이득이다. 경찰관은 위급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므로 경찰관들에게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공감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믿었기에 경찰관들에게 책을 읽게 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야말로 그런 가치를 독자 스스로가 발견하고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아셨던 지혜로운 시장과 경찰청장, 지금은 모두 퇴직하셨을까.

즐겁기도 하지만 그런 면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영혼을 거는 모험이다. 순수하게 책을 읽고 즐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짧은 가을이 지나고 추위가 오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의 목록들을 떠올려본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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