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간 관세·안보 합의를 문서화하는 '조인트 팩트시트(JFS·합동설명자료)'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뉴시스 양국은 우선 전략산업에서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하며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확인했다. 조선·에너지·반도체·의약·AI·양자 등 전 분야에 걸친 이번 투자에는 미국이 승인한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분야 투자와 향후 체결될 전략투자 양해각서를 기반으로 한 2000억 달러 투자가 포함된다. 미국은 이에 맞춰 한국산 제품에 대해 자유무역협정 또는 최혜국대우(MFN) 기준 중 더 높은 수준을 적용하되, 상한을 15%로 제한하기로 하며 관세 부과의 불확실성을 크게 낮췄다. 자동차·부품·목재 등 기존의 고율 관세 대상 품목도 동일한 상한이 적용되면서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 환경에 안정성이 더해졌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환율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도 함께 마련됐다. 한국이 연간 시장에서 달러를 200억 달러 이상 조달하지 않도록 상한선을 두고, 시장 불안이 감지되면 투자 시기나 규모를 조정할 수 있도록 협의 구조를 만들었다. 투자 패키지 실행에 앞서 금융 안전장치를 먼저 확보한 셈이다.
양국은 비관세 장벽 문제도 연내에 정비하기로 하며 시장 접근성을 넓히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한국은 연간 5만대였던 미국산 자동차의 무수정 수입 상한을 폐지하고, 농축산물과 바이오테크 제품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 기업이 국내 디지털 규제나 플랫폼 정책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며,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히 보장하겠다는 방침도 포함됐다. 미국은 한국산 의약품·항공기 부품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추가관세를 철회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3국에 부여하지 않겠다고 명시하며 균형을 맞췄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안보 분야에서도 양국의 협력 수준이 대폭 확대됐다. 미국은 핵을 포함한 확장억제 제공을 다시 확인하고 핵협의그룹(NCG)을 강화하기로 했다.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을 명시하며 안정적 억제 구조를 유지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국은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으로 조기 확대하고, 2030년까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 달러 규모의 지원 계획도 함께 공유되면서 한국의 안보 기여도가 크게 높아진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능력 강화, 미국산 첨단 무기 체계 확보, 양국 방위산업 협력 확대 역시 함께 추진된다. 한반도와 지역 안보 현안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도 다시 정비되었다. 양국은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며 북한에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포기를 촉구했다.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도 명시됐으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현상유지,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질서 유지 원칙이 다시 강조됐다. 한국이 미국의 지역 전략에 한층 더 긴밀하게 정렬하는 흐름이 문서 전반에서 확인된다.
이번 팩트시트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부분은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SSN) 건조를 승인한 대목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필요한 연료 공급 방안과 기술 요건을 한국과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원전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된다. 한미는 조선소 기반 정비·MRO 협력과 우라늄 농축·재처리 문제에 대한 절차적 지원을 기존 관련 협정의 틀 안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의 조선·방위산업이 한 단계 높은 전략 자산을 확보하게 되는 변화로 평가된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