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민연금이 개인투자자들보다 해외 주식 투자에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도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쌓아두며 달러 수급 불균형과 환율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일반정부’의 해외 주식 투자는 총 245억1400만달러로 집계됐다. 작년 동기(127억8500만달러)보다 9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 주식 투자는 95억6100만달러에서 166억2500만달러로 74% 늘었다. 통상 일반정부는 국민연금, 비금융기업 등은 개인투자자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뉴스1 결국 국민연금이 개인투자자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해외 주식 투자를 확대한 셈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지난해 1∼3분기 서학개미의 1.3배 수준에서 올해 같은 기간 1.5배로 격차가 더 확대됐다. 전체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34%로, 개인투자자(23%)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주식 투자는 환율 상승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외투자를 위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면 시장에 그만큼 달러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한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이 4자 협의체를 가동해 외환 시장 안정화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다만 최근 환율 급등에 서학개미들의 해외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10∼11월에 123억3700만달러에 달하는 해외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를 한은의 1∼3분기 통계와 합산하면 올해 1∼11월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총 289억6200만달러로 집계된다. 전년 동기 99억900만달러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달러 수급의 불균형을 야기하는 요인은 또 있다. 최근 기업들이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이 약 537억44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443억2500만달러)보다 약 21%나 증가했다.
이달 환율이 급격히 오른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차익 실현을 위해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게 일반적인데, 오히려 더 쌓아뒀다는 의미다. 환율은 지난 28일 종가 기준 1470.6원으로 3일 1428.8원에 비해 41.8원이나 올랐다. 많은 기업이 미국 내 투자자금 수요에 대비하거나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개인도 달러를 모으기는 마찬가지다. 27일 기준 개인이 보유한 달러 예금 잔액은 122억5300만달러로 8월 말(116억1800만달러)부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개인들의 달러 예금 증가는 환율 상승 전망과 함께 해외투자 수요가 커진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기업과 개인, 기타 공공기관 등을 포함한 전체 달러 예금 잔액은 670억1000만달러로 지난달 말보다 18% 늘며 올해 들어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환율 방어를 위해 정부가 나섰지만 아직 마땅한 환율 하락 요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기업이나 개인 모두 우선 달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안전 심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