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마음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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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오른쪽 어깨가 왼쪽에 비해 조금 아래로 기운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옷을 입으면 셔츠의 오른쪽 소매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겉옷 밖으로 삐져나옵니다 한발 앞서 걷다가 한발을 뒤로 빼던 어린 날부터 나란히 걷고 싶었습니다 걷는 것은 몸의 일입니다만 당신의 왼쪽에 서서 걷는 것은 마음의 일이라 어깨가 기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깨가 기운 것을 두고 누군가는 오른손을 많이 써서 그렇다고 합니다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손은 마음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시집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문학동네) 수록

●심재휘
△1963년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등 발표.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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