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합법화는 여성 착취… ‘구매자 처벌’ 확대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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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합법화는 여성 착취… ‘구매자 처벌’ 확대 모색
성매매 뿌리 뽑기/ 신박진영 외 11인 지음/ 봄알람/ 2만7000원

어떤 이들은 매춘부를 ‘인류 최초의 직업’이라고 부른다. 일부 여성학자들은 ‘성 노동론’을 앞세워 여성의 성매매할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매매 뿌리 뽑기’의 저자들은 단호하다. 성매매는 ‘섹스’도 ‘일’도 아니며, 구조적 여성 성착취라고 이들은 말한다. 책은 선언한다. “성매매는 성평등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다. 세계의 사례는 이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다. ”

공저자인 성매매 경험 당사자 활동가 지음은 묻는다. “성구매자들은 ‘저곳에서는 저 여성을 착취해도 된다’고 여기고 이를 목적으로 업소에 간다. 국가의 용인·관리하에 이런 공간, 이런 사람이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 세계의 현실이다. 이 현실이 방치되는 이유는 뭘까?”

신박진영 외 11인 지음/봄알람/2만7000원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책에는 활동가, 연구자, 교육자, 판사 등 다양한 필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여성 폭력이 발생하는 세계 각국의 ‘현장’을 중심으로 성매매 관련법과 행정, 정책 논쟁, 국제 연대의 흐름을 점검한다.

기획의 주축인 신박진영은 2005년부터 반성매매 운동과 성매매 여성 지원 활동을 이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다. 그는 2020년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봄알람)을 통해 ‘성매매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성매매 구조와 국가 주도 발전의 역사, 여성 착취 실태를 분석한 바 있다. ‘성매매 뿌리 뽑기’는 이 문제의식을 세계로 확장한다. 성매매는 한 국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 작동하는 권력의 문제이며, 한 나라의 선택이 다른 나라의 착취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2장 ‘성착취 제국주의─동남아시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남성들의 대규모 ‘성착취 관광’은 성매매가 글로벌 불평등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드러낸다. 한국이 외부로부터 영향받아온 역사도 함께 다뤄진다. 일본은 성매매를 풍속의 일부’로 간주해 폭넓게 허용해왔고, 이러한 태도는 한국 사회에서 ‘성진국’이라는 왜곡된 모범으로 소비됐다.

성매매는 흔히 ‘범죄화해 근절할 것인가, 합법화해 관리할 것인가’라는 구도로 설명된다. 한국 사회에는 네덜란드나 독일 같은 합법화 국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존재하지만, 저자들은 이 환상의 이면을 구체적 사례로 보여준다. 3장에서 다루는 네덜란드와 독일은 합법화 시행 20년이 훌쩍 지난 국가들이다. 독일은 2002년 ‘성매매 여성의 권리 강화’를 내세워 합법화를 단행했지만, 결과는 대형 성매매 업소 급증과 성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주 여성 등 취약한 집단의 유입은 가속화됐다. 거대 업소의 포주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 대접받는 반면, 성매매를 여성 대상 폭력으로 비판하는 활동가들과 당사자들은 위협과 침묵을 강요받는다.

이와 대비되는 모델이 성매매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를 처벌하는 스웨덴의 ‘신폐지주의’, 이른바 노르딕 모델이다. 독일의 합법화 정책과 스웨덴 모델은 여성의 권리 보호와 아동·청소년 성착취 방지라는 동일한 목표로 출발했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독일이 성산업의 제도화를 통해 착취 구조를 확장했다면, 스웨덴은 정책의 본래 목적을 달성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도 책에는 미국, 뉴질랜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사례가 더불어 소개된다.

이 책은 국제 연대 실천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수년간 영국,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뉴질랜드 등지의 당사자 활동가들과 세미나를 진행했고, 노르딕 모델 정책 입안에 참여한 전 상원의원 등을 초청해 강연과 포럼, 반성매매 캠페인을 함께했다. ‘성매매 뿌리 뽑기’는 성매매를 둘러싼 세계의 선택과 그 결과를 비교하며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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