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천재음악가를 모아놓으면 맨 앞에 설 만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에 의자는 낮은 걸 고집하고, 한여름에도 장갑과 코트를 착용했다. 연주하다 몰아지경에 빠지면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렸으며 31세부터 돌연 “청중 앞에서 연주는 서커스”라며 평생 청중없이 스튜디오 녹음에 몰두했다. 1955년 데뷔 앨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 어릴 때 처음 산 음반이 글렌 굴드의 바흐 전집 박스 세트였다는 임윤찬은 8살 때 접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음악적 빅뱅’이었다고 표현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연주자로서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삶을 살았던 글렌 굴드의 내면을 그의 친구이자 정신의학 전문가인 저자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심리전기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가까운 이에게조차 수수께끼투성이였던 이 고독한 천재 내면의 고통을 가장 입체적으로 파헤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저자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두 주제 ‘환희(Ecstasy)’와 ‘비극(Tragedy)’을 그가 남긴 두 번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1955년, 1981년)과 연결짓는다. 무명이었던 굴드가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게 된 첫 녹음 당시 이 곡은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나 별 매력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굴드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템포와 타건의 명료함을 앞세워 기존의 바흐 해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청춘의 거침없는 에너지와 기교가 폭발한 환희의 순간’으로 저자는 젊은 천재가 느꼈던 음악적 황홀경을 해석한다.
피터 F 오스트왈드/한경심 옮김/을유문화사/3만8000원 굴드가 사망하기 불과 1년 전 50세의 나이에 다시 녹음한 1981년 버전은 전혀 다른 공기를 품고 있다. 폭발적인 속도는 사라지고, 대신 극도로 느리고 명상적인 템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저자는 이를 굴드의 신체적 쇠락과 연결 짓는다. 약물 남용과 건강 악화로 예전 같은 기계적 기교를 부리기 어려워진 굴드가, 오히려 그 한계를 넘어 음악의 구조적 완벽함과 내면의 깊이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굴드는 전화기를 통해서만 타인과 긴 대화를 나누었으며 육체적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저자는 굴드의 천재성이 그를 세상과 연결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를 파멸로 이끄는 고립의 원인이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