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채 느끼기도 전에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이 바로 자살 유족입니다. "
강명수 한국자살유족협회장은 지난 23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유족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채 떠나보내기도 전에 정보 부재와 사회적 편견 등 위태로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자살유족협회는 유족의 치유를 돕고 정책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지난 1월 직접 설립한 단체다.
강 협회장은 자살 사건을 접할 때 유족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나 질병과 달리 죽음의 이유조차 알 수 없기에 유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인다"며 "죽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애도가 시작되는데, 자살 유족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충격 단계에서 벗어나는 데만 수년이 걸리는 '복합성 애도'를 겪는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과정도 유족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곤 한다. 강 협회장은 "유족이 장례도 치르기 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경찰인데,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자살과 타살 여부 등을 따지다 보면 유족에게 트라우마를 안기는 경우가 있다"며 "경찰이 초기 수사 단계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조모임으로 유족을 즉각 연계해 주는 심리적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문 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지원 체계의 진입 장벽도 높다. 강 협회장은 유족 발굴과 사후 관리의 가장 큰 걸림돌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 문제를 꼽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의 지원을 받으려면 유족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극도로 경황이 없고 사회적 낙인효과를 우려하는 유족 입장에서 선뜻 동의서를 작성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지원 체계에서 누락된 '숨은 유족'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고립은 유족을 더욱 옥죄인다. 강 협회장은 "자녀의 사망 소식을 알리고 장례를 치르는데 자살이라는 소문이 나자 지인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던 사례가 있을 정도로 유족은 철저한 인간관계 단절을 경험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장의 부재로 인한 생계 곤란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사망했을 경우 산재 입증을 위해 유족 홀로 외로운 법률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강 협회장은 '당사자 중심의 초기 대응 체계' 구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유족이 접하는 경찰,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 이웃 등이 곧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유족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동료지원 활동가'가 전국에 58명뿐이라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사회적 편견 해소 역시 시급한 과제다. 협회는 지난해 부산, 전주 등 전국 5개 도시를 돌며 '유가족 토크 포럼'을 개최하는 등 유족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애도의 장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 협회장은 "유족이 무대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낙인을 깨는 강력한 사회운동"이라며 "행정적 한계로 관리가 끊기는 유족을 위해 민간 차원의 찾아가는 서비스도 병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강 협회장은 정책적 무관심과 청소년 유족의 사각지대를 꼬집었다. 그는 "올해 정부 대책에서 자살 유족 관련 내용은 단 네 줄뿐일 정도로 예산과 관심이 미흡하다"며 "특히 발달 단계마다 상실의 고통이 반복되는 청소년 유족들을 위해 생애 주기별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살 예방은 우리 모두가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관심 가져야 하는 이슈인 만큼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효성 있는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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