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치유 효과에도…예산·낙인에 갇힌 '원스톱 서비스’[남겨진 사람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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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치유 효과에도…예산·낙인에 갇힌 '원스톱 서비스’[남겨진 사람들]①

정부가 자살 유족 지원을 위해 도입한 '원스톱 서비스'가 확실한 심리 회복 효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예산 부족과 사회적 낙인이라는 벽에 부딪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유족은 늘고 있지만 서비스의 전국 확대는 예산 확보 문제로 내년 7월 이후에나 시행될 방침이다.



27일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치료비 지원을 받은 유족들의 우울척도(PHQ-9) 평균 점수는 치료 전 17.2점에서 치료 후 8.2점으로 52.3% 감소했다. 특히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심각한 우울' 상태였던 유족 가운데 51.8%는 치료 이후 '가벼운 우울' 또는 '우울 아님' 단계로 호전됐다. 유족 A씨는 "사별 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고, 유족 B씨는 "자살 유족 치료비 지원을 통해 약물 치료하며 자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살 유족의 슬픔은 장기화하는 경향이 있어 치료 접근성 완화와 지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2015∼2023년 자살 심리부검 면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참여한 유족의 98.9%는 사별 후 심리·행동(97.6%), 대인 관계(62.9%), 신체 건강(56.5%), 가족 관계(52.2%) 등에서 변화를 겪었다. 자살을 떠올리는 '자살 사고'는 56.3%가 경험했고, 심한 우울(20.0%), 심각한 불면증(33.1%) 등 다른 정신 건강 관련 문제도 겪었다.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의 핵심은 신속한 초기 개입이다. 경찰이나 소방 등으로부터 출동 요청이 접수되면 전담 인력이 24시간 현장으로 출동해 유족을 대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안내한다. 주로 경찰서 등에서 초기 상담이 이뤄지며, 유족의 동의를 거쳐 기초센터에 등록된 후 지속적인 관리가 이어진다. 지원 내용은 심리적 안정을 위한 애도 상담뿐만 아니라 당장 시급한 현실적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특수청소비 ▲일시 주거비(숙박비) ▲사후 행정처리(검안·이송 등) ▲법률 행정처리(상속 포기·부채 문제 등) ▲학자금 지원이 있다. 현재 서울·대구·인천·광주·대전·세종·강원·충북·충남·경북·경남·제주 등 12개 시·도와 145개 시·군·구에서 시행 중이다.


전국 확대 시행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 문제다. 해당 사업은 국비 50% 지방비 50% 매칭 사업인데 국비 확보가 지연됐기 때문이다. 올해 자살 유족 치료비 지원 예산은 국비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기금을 합쳐 3억원으로, 지난달 기준 1030명에게 지원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가 1만4588명에 달했고, 사망자 1인당 최소 5~10명의 유족이 영향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 낙인은 서비스 이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원스톱 서비스 이용 동의율은 63.6%에 그쳤다. 이는 2020년 69.2%, 2023년 72.6%보다 오히려 뒷걸음질 친 수치다. 자살로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우려해 서비스 연계를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자살 사망자와 유족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 제도 접근 자체를 막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스톱 팀에서 연락했는데 유족이 서비스 이용을 거부하는 경우 더는 연락을 드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방수영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유족은 본인의 상황을 숨기려다 우울감이 깊어져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이 높다"며 "이들을 깊이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동료지원 활동가' 예산을 확대해 더 많은 활동가를 발굴한다면 자살을 숨겨야 한다는 편견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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