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국민 배우’…안성기, 연기 인생으로 완성한 롱테이크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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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국민 배우’…안성기, 연기 인생으로 완성한 롱테이크 [종합]
배우 안성기,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한국 영화의 가장 따뜻한 얼굴, 배우 안성기가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과 삶을 향한 연기로 한 시대를 건너온 그는 끝내 스크린 너머의 기억으로 남았다.

안성기의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5일 “안성기가 이날 오전 9시, 향년 74세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수십 년 동안 스크린 한가운데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리를 지켜온 안성기는 그렇게 대중의 곁을 떠났다.

안성기. 사진 | 연합뉴스
안성기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배우다. 그의 연기는 늘 사람을 향해 있었다. 유행보다 진심을, 박수보다 책임을 선택했던 배우였다. 그는 스스로를 앞세우기보다 작품과 현장을 존중하며 ‘배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평생으로 답해온 인물이었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안성기는 만 5세의 나이에 스크린 앞에 섰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1957)였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고 안화영 씨와 김기영 감독의 인연으로 시작된 이 첫 발걸음은, 훗날 한국 영화사의 가장 긴 여정 중 하나가 된다. 7세에는 ‘10대의 반항’(1959)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0대 시절에만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그는 누구보다 일찍 스타가 됐지만, 동시에 연기를 잠시 내려놓는 선택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하고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대 중반에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그 공백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영화 ‘실미도’. 사진| 시네마서비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시작으로 안성기의 이름은 다시 한국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배창호 감독과 함께한 ‘고래사냥’,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은 한 시대의 청춘과 상처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얼굴로 관객 앞에 섰고, 그 평범함 속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장르의 경계 역시 ‘배우’ 안성기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한국 영화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 ‘실미도’에 이르기까지, 안성기는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과장되지 않은 연기, 절제된 감정, 그리고 침묵마저도 서사가 되는 배우. 그의 연기는 늘 말보다 가슴에 오래 남았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안성기.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안성기는 스크린 밖에서도 한국 영화의 미래를 고민했다. 2000년부터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아 영화계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2006년에는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나섰다. 2010년에는 시네마테크 건립을 촉구하며 ‘영화 도서관’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 영화의 오늘을 누리기보다, 내일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다만 안성기에게 2019년 혈액암 진단은 하나의 시련이었다. 완치 판정 이후에도 재발과 투병이 이어졌지만, 그는 연기를 놓지 않았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2023)에 출연하며 끝까지 배우로 남았다. 안성기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를 만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태도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안성기. 사진 | 아티스트컴퍼니
안성기의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명예장례위원장 신영균을 비롯해 배창호 감독, 이갑성 이사장, 신언식 직무대행, 양윤호 이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 영화인들이 운구에 참여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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