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 간 신뢰 문제 아닙니까."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작심한 듯 말했다. 어딘가로 이동 중이던 관계자의 발걸음 소리는 끊겼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그간 쌓여온 응어리를 풀듯이 "정치권의 이전 논란에 어떤 공식 입장을 내놓긴 어렵습니다만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요?"라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신뢰"를 말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와 기업이 굳게 맺은 약속이란 것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불거졌다. 지난달 기후에너지부 장관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이유로 반도체 산단 호남 이전 가능성을 언급하자 정치권이 들끓었다.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이 성명을 내면서 수도권과 갈등 조짐까지 보였다.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의도가 컸다. 이미 착공한 반도체 산단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8일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에 대해 "검토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기까지 반도체 기업들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지방선거 때까지 이 논란이 지속될까 내심 두려웠다"고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꿈이 영글고 있는 핵심기지다. 'K-반도체'의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는 말도 나온다. 반도체 전진기지로 낙점할 때까지 기업 차원에선 인력수급, 각종 장비 생태계, 물류 등 다방면을 고려했다. 투자 단위가 수백조원인데, 검토는 더욱 철저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수요가 불이 붙은 상황에서 공장 건설은 속도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공장 이전 논란은 오히려 K반도체 발목만 잡는 꼴이 됐다. 타이밍이 뒤처지면 결국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일본의 교훈에서도 확인된다.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잃은 건 1990년~2000년대 공장을 지으려다 취소하거나 연기한 영향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산단 이전은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산단 이전 논란은 청와대의 선긋기로 해프닝에 그쳤다. 하지만 기업들로선 생각지도 못했던 돌발변수로 가슴앓이를 앓아야 했다. 또 불씨가 완전히 사라졌을지도 불분명하다. 지방선거가 열리는 6월3일까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차례 정치인들의 입방아에 오를 게 분명하다. 지역논리를 앞세워 산단 이전을 갑론을박하기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건설적인 방안을 논의할 순 없나.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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