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만나는 종교인에 대해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인류 절대다수가 믿는 종교들이 타인보다 선하게 살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 역사를 들여다보면 세상 어느 집단보다 이기적이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종교인들은 분열되어 갈등과 분쟁을 일삼는 종교의 이면을 직시하며 “나는 제대로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왜 종교에 목을 매는가?’에서 수많은 사람이 따라온 종교가 왜 길을 잃고, 본연의 모습에서 이탈하게 됐는지 탐구하면서 종교의 본질 회복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종교의 본질 회복과 미래를 향한 성찰’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오늘날 벼랑 끝에 내몰린 종교계가 안고 있는 기복화와 세속화, 파벌주의, 비전 상실 등 종교 현안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고, 격변기를 맞이한 종교의 미래에 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어쩌다 신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기복 신앙,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됐는가?”, “사랑을 내세우는 종교가 어떻게 수많은 테러와 전쟁의 배경이 됐는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참된 종교, 진실한 종교인의 길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탈종교 시대’를 맞아 종교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의 시작점, 즉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왜 종교에 목매는가?/권오문/올림과세움 책에 따르면, 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신(神)의 이름으로 자행된 분열과 갈등, 특히 가톨릭과 이슬람교가 200여 년 동안 벌인 십자군 전쟁,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은 물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분쟁의 이면에는 언제나 타자를 악마화하고 증오하는 왜곡된 종교적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교황의 경우 보니파키우스 6세(896)부터 스테파누스 7세(928~931)까지 32년 동안 14명의 교황이 교체될 만큼 세속적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평균 재위 기간이 2년 반이라는 것은 그만큼 교황직을 놓고 쟁탈전이 치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다가 갈릴레이를 심판했던 중세의 종교재판에서 보듯이 종교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자유로운 탐구를 억압하고, 낡은 교리의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두는 어리석음을 반복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웃 종교인에게 서슴없이 돌을 던지고, 청빈과 무소유를 설파하던 성직자들이 세속의 욕망에 깊이 연루된 사건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이처럼 인류를 지배해 온 종교는 구원의 빛과 파괴의 어둠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종교에 모든 것을 거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길을 잃고 세속화된 종교가 왜 본질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교의 근원인 신의 참모습을 밝히고 성인들의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격변기를 헤쳐 나갈 종교의 존재 이유를 다시 찾고 참된 신앙의 길을 갈망하는 이들의 염원에 응답하고자 기획됐다.
특히 이 책은 “어쩌다 신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기복 신앙,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됐는가?”, “사랑을 내세우는 종교가 어떻게 수많은 테러와 전쟁의 배경이 됐는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참된 종교, 진실한 종교인의 길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탈종교 시대’를 맞아 종교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의 시작점, 즉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개인의 소원성취를 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인들이 꿈꿨던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상을 실현하는 데 종교인들이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종교의 역할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첨단과학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낡은 세계관에 자신을 가둔 제도 종교가 어떻게 속절없이 표류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인류의 영적 갈증에 응답할 수 있는 미래 종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종교는 더는 자신을 고립시키던,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닫힌 종교’의 형태를 띠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정한 교리를 믿고, 정해진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만이 ‘우리’가 될 수 있었던, ‘우리’와 ‘그들’을 가르던 배타적인 종교는 점차 그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열린 네트워크 형태의 영성공동체, 즉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고요히 명상하고, 불자이면서 예수의 가르침에서 깊은 영감을 얻는 영성공동체가 주목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무엇을 ‘믿는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저자는 종교가 제도와 교리를 넘어서면서 신앙생활 역시 일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오랫동안 우리를 옭아매던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바로 거룩한 진리를 체험하고 실현하는 살아 있는 수행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웅장한 성전 안에서만 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 식탁에서 나누는 가족과의 정겨운 대화 속에서, 분주한 직장에서 동료와의 진실한 협력 속에서, 그리고 저녁노을이 짙어지는 공원을 산책하는 고요한 순간 등 이러한 일상의 모든 조각 속에서 경이로운 신의 현존을 느끼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미증유의 가치 부재 시대를 맞아 ‘신 중심의 가치관’에 주목하고 있다. 비인간화돼 가는 현대문명, 특히 서구 문명이 신을 상실한 채 상대적 가치관에 매몰되면서 위기에 처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모든 종교가 추구해 온 것처럼 신 중심의 ‘절대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시종 역설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