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심장, 기업연구소①]한국 반도체 신화의 씨앗도 IB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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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심장, 기업연구소①]한국 반도체 신화의 씨앗도 IBM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 반도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중에서도 D램(DRAM)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표 주자다. 인공지능(AI)을 만들어 내는 그래픽처리장치(GPU)도 D램을 쌓아 만든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D램은 한국 경제의 대들보다. 이 작은 칩이 인류의 디지털 혁명을 이끌고 한국을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 올려놓을 것이라고 1966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꽃이 한국에서 피어날 것이라고는 누가 예상했을까.


모든 것의 시작은 IBM 왓슨연구소의 한적한 연구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천재 과학자 로버트 데나드 박사의 머릿속에서였다.


당시 컴퓨터의 메모리는 6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된 S램 주를 이뤘다. 비싸고 크고 전력 소모도 많았다. 데나드 박사는 훨씬 단순한 구조, 즉 단 하나의 트랜지스터와 축전기(capacitor)만으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작고 저렴하며 전력 효율도 높은 이 새로운 메모리는 'D램'이라 명명됐다. 2024년 데나드 박사가 사망하자 뉴욕타임스(NYT)는 현대 컴퓨팅에 꼭 필요한 대량 저장 가능한 칩을 만든 개발자가 사망했다고 추모하기도 했다. 거대한 저장장치를 반도체로 대체해 컴퓨팅의 미래를 바꿨다는 의미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도 그와 함께 연구했다. 데너드 박사의 근속기간은 1958년부터 2014년까지다. 무려 56년이다.


D램이라는 씨앗이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숲을 이루기까지는 IBM과의 깊은 인연이 있었다. 1970년대 이후 삼성은 이병철·이건희 전 회장의 주도로 반도체 산업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허가 만료된 IBM의 D램 원천 기술은 삼성이 반도체 불모지에서 '초격차'의 신화를 써 내려가는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 삼성전자는 이후에도 IBM과 함께 집요한 연구개발(R&D)을 통해 수율을 높이고 미세 공정 기술을 발전시키며 마침내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섰다. 왓슨연구소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세월이 흘러 IBM은 더 이상 D램을 직접 생산하지 않지만 반도체 생태계의 가장 꼭대기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설립한 차세대 반도체 기업 래피더스(Rapidus)가 2㎚(1㎚=10억분의 1m) 최첨단 공정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곳도 바로 IBM 왓슨연구소다. IBM의 핵심 서버 중앙처리장치(CPU)는 삼성에서 제조한다. IBM의 한 연구자는 지금도 삼성전자의 기술자들이 이곳에서 함께 D램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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