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자리한 LG 인공지능(AI)연구원 사옥. 카페와 게임방, 열린 회의실이 마련된 연구 공간은 전통적인 연구소의 딱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각자 개성에 맞게 꾸민 책상과 자유로운 출퇴근 문화, 계열사와 함께하는 협업 시스템이 어우러진 이곳은 기업 연구소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는다. 실패와 도전이 일상처럼 이어지는 이 공간에서 초거대 언어모델 '엑사원'이 탄생했다.
2020년 출범한 LG 인공지능연구원은 불과 5년 만에 AI 연구의 무대 중앙으로 올라섰다. 시행착오 끝에 2022년 12월 첫 성과로 내놓은 엑사원 1.0은 세대를 거듭하며 성장했고, 지난 7월 공개된 4.0 버전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영역 평가에서 94.5점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3월에는 국내 최초 추론형 모델 '엑사원 딥'을 선보이며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까지 수행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곳곳이 사색공간…책상·PC도 가지각색
이달 초 찾은 LG 인공지능연구원은 공간부터 달랐다. 세계 유수 연구소를 벤치마킹해 설계된 내부는 '생각의 자유'를 위한 장치들로 가득했다. 층고는 낮지만, 좌우가 넓게 트여 있어 시야가 확장됐고, 군데군데 마련된 구석 공간은 연구원들이 혼자 몰입해 사색하기에 알맞았다. 책상 뒤나 회의실 모퉁이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모습은 연구소의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동료들은 그런 그들을 보고도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가만히 둬 혼자만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상과 개인 PC에선 개발자들의 개성이 묻어놨다. 개발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책상을 변형하고 PC 모니터를 세웠다가 눕혔다. 서서 일할 때 아이디어가 더 잘 나오는 개발자들은 의자를 과감히 치우고 서서 일하기도 한다. 6층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콘솔게임, 보드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게임방이 있고 음료와 다과를 즐기며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개발자들에겐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두지 않는다. 회의 때문에 강제로 출근케 하거나, 사무실에서 일정 시간은 있어야 하는 지정근무시간제도 LG AI연구원에는 없다. 연구원의 불은 24시간 동안 켜져 있다. 개발자들은 집에 있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확인해야 할 일이 생기면 새벽에라도 나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놨다.
오너의 결단 "확신 있다면 과감하게"
연구원이 잘 운영되는 데는 그룹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도 한몫하고 있다. 엑사원이 개발된 배경엔 구광모 ㈜LG 회장의 과감한 결단도 있었다. 임우형 공동원장은 구광모 회장 등 경영진 앞에서 엑사원 개발계획을 처음 대면보고했던 순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엑사원은 연구원이 2020년 12월 출범하고 즉시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첫 개발 프로젝트였다. 빨라지는 AI 시장 흐름에서 가장 먼저 선점해야 할 곳으로 '언어 모델'이라 판단하고 엑사원을 선봉에 세울 무기로 개발해보고자 했다. 임 원장은 당시 개발팀 임직원들과 함께 보고 자리에 갔다.
그는 "엑사원은 그룹 차원에서도 투자가 필요한 과제라고 보고했고, 구광모 회장이 '연구자들이 보기에 이게 맞는 방향이냐'고 물어본 뒤 '그렇다면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며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한 금액이었는데도 신뢰와 지지를 보여줘 연구와 개발이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최근 LG그룹은 인공지능연구원을 중심으로 계열사들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계열사들은 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에 AI를 적용하고, 인재를 파견해 교육과 실습을 이어가고 있다. 연구원은 현장에서 제기된 과제를 연구로 풀어내고, 결과를 다시 사업에 적용하는 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임우형 공동원장은 "LG의 강점은 현장의 문제와 연구를 계열사들이 함께 이어가며 하나의 사이클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하루 3분, 퀴즈 풀고 시사 만렙 달성하기!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