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투수 오명 씻어낼 절호의 기회’…건강하게 돌아온 NC ‘132억 왼팔’ 구창모, 삼성과의 와일드카드 1차전 선발 출격

글자 크기
‘사이버 투수 오명 씻어낼 절호의 기회’…건강하게 돌아온 NC ‘132억 왼팔’ 구창모, 삼성과의 와일드카드 1차전 선발 출격
야구 팬들 사이에 통용되는 용어 중 ‘사이버 투수’가 있다. 거액의 계약을 맺을 정도로 기량은 확실하지만, 부상 등의 이유로 1군 등판은커녕 2군 마운드에서도 잘 볼 수 없는 투수를 이르는 말이다. 실전 마운드가 아닌 게임 등 가상 현실에서만 존재한다는 의미의 조롱성 용어다.

원조 사이버 투수라 할 수 있는 강철민(은퇴)을 시작으로 한때 ‘류윤김’ 3인방이라 불릴 정도로 국내 투수 3대장으로 꼽혔던 윤석민도 사이버 투수라 불린다. 윤석민은 2011년엔 투수 4관왕을 달성할 정도로 국내무대를 평정했지만, 메이저리그 도전 실패 후 국내 유턴 뒤 90억원의 FA 계약을 맺었지만, 1.5시즌을 뛴 뒤 부상으로 인해 드러누웠다. 결국 윤석민도 ‘사이버 투수’라는 멸칭을 피할 수 없었다. 은퇴 후 윤석민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명을 ‘사이버 윤석민’으로 지을 정도로 이제는 자신의 향한 조롱성 밈을 체화하는 모습이다.

현역 중에 사이버 투수의 계보를 잇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NC의 좌완 구창모다. ‘건강하기만 하다면’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실제 건강하면 KBO리그를 씹어먹을 포스를 내뿜는다. 프로 5년차였던 2019년 10승7패 평균자책점 3.20으로 잠재력을 터뜨린 구창모는 2020년 전반기까지 9승 무패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하며 리그를 맹폭했다. 왼판 전완부 미세 염증으로 후반기를 통으로 쉬었으나 그해 가을야구에 돌아와 한국시리즈에서 환상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NC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후엔 부상과 복귀의 반복이었다. 2021년을 피로골절로 인해 통으로 쉬었다가 2022년 중반에 돌아와 11승5패 2.10을 기록하며 건강하기만 하면 정상급 투수임을 또 한번 증명했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규정이닝을 채우진 못했지만, 건강하기만 하면 리그 최강의 좌완 선발 역할을 해주는 모습에 NC 프런트는 구창모에게 7년 132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안겼지만, 이후로 또 다시 부상으로 실전 마운드에서 사라졌다. 계약 첫 해 2차례 부상 이탈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승선이 불발됐고, 군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그는 결국 상무에 입대했다.

오랜 기간 1군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구창모는 올해 6월17일 전역했지만, 전역 이후에도 1군 마운드에 오르기에는 한참이나 걸렸다. 결국 9월초 돌아왔다. 무려 2년, 일자로는 711일 만의 1군 마운드 복귀였다.

돌아온 구창모는 왜 자신이 마운드에 오르기만 하면 위력적인 투수인지를 또 한 번 증명했다. 복귀 후 선발 3경기, 구원으로 1경기 등판했다. 선발 등판에도 투구수 제한이 걸려있어 5이닝을 소화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마운드 위에선 위력적이었다. 4경기 성적은 14.1이닝 소화, 평균자책점 2.51. 탈삼진은 18개로 이닝당 1개를 가볍게 넘겼고, 볼넷은 단 3개에 불과할 정도로 과거의 칼날 같은 제구력은 여전했다.

특히, 올 시즌 NC의 5강 진출을 결정지은 경기나 마찬가지였던 지난달 30일 KT전에 구원 등판했다. 5위 경쟁팀인 KT를 이기기 위해 이호준 감독은 구창모까지 마운드에 올리는 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5회에 올라와 8회까지 4이닝을 소화하며 피안타는 단 1개만 내주고 탈삼진을 무려 9개나 솎아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7km까지 올라올 정도로 과거 전성기 시절의 구위를 점점 재현하고 있는 구창모다. NC가 9-4로 승리하면서 구창모는 2023년 5월 11일 수원 KT전 이후 87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올 시즌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과거의 위용을 완벽하게 되찾으면서 이제 NC는 패배는 물론 무승부도 허용되지 않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가장 중요한 1차전 선발의 중책을 구창모에게 맡긴다.

삼성과 NC는 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1차전을 갖는다. 4위 삼성은 1차전과 2차전 중 한 경기라도 무승부 또는 승리를 거두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절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반면 5위 NC는 1,2차전을 모두 잡아내야 한다. 경우의 수가 딱 하나다.

NC가 절대 불리하지만, 꼭 불가능한 건 아니다. 2015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2023시즌까진 모두 4위팀이 시리즈를 잡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지난해 이 기록이 깨졌다. 지난해 5위 KT가 4위 두산에 2연승을 거두며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NC로선 지난해 KT가 해낸 기적의 재현을 노린다.

게다가 NC는 정규리그 막판 기적의 9연승을 통해 포스트시즌 막차 티켓을 따낸 만큼, 기세는 삼성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이러한 팀의 기세를 안고 ‘건강한’ 구창모가 마운드에 오른다.

올 시즌 딱 4경기에 등판했지만, 삼성전 등판 기록도 있다. 지난달 18일 삼성전에 등판해 3이닝을 던져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외인 최초 50홈런에 KBO리그 사상 최초로 50홈런-150타점을 동시 달성해낸 르윈 디아즈를 비롯해 ‘캡틴’ 구자욱, 김성윤, 김지찬, 김영웅 등 삼성의 주축 타자들이 모두 좌타자라는 것을 의식한 구창모의 1차전 선발이다. 6~7이닝까지 소화는 무리겠지만, 5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준다면 NC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과연 구창모는 2020 한국시리즈 이후 5년 만의 가을야구 복귀전에서 ‘사이버 투수’의 오명을 씻어낼 수 있을까. 구창모가 삼성의 외인 에이스 후라도를 잡아준다면 NC의 기적은 더 길어질 수 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