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선주만은 유독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 조선업 협력과 이에 따른 추가 수주 기대감으로 상승 모멘텀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란 평가에서다.
하지만 대표 종목은 증권가의 호평에도 높은 밸류에이션 탓에 투자가 망설여진다. 이에 시장은 조선 기자재주를 주시하며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세진중공업에 주목하고 있다. 경쟁사 대비 높은 영업이익률에도 저평가됐다는 평가다.
HD현대그룹의 핵심 협력업체, 세진중공업
2015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세진중공업은 선박 필수 기자재인 데크하우스와 액화석유가스(LPG) 탱크를 포함한 기자재 생산을 주력으로 한다. 데크하우스는 선원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선실이라 불리며, 선종별 맞춤 설계돼 대량 생산이 어려운 고부가 제품이다.
세진중공업은 1999년 설립 후 20여년간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등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들에 데크하우스·가스탱크 물량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조선업 슈퍼사이클로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수주가 늘면서 추가 고객을 확보했다. 지난해부터 한화오션·삼성중공업과도 공급 계약을 맺으며 국내 대형 조선 3사에 주요 기자재를 모두 납품하게 됐다.
이를 발판 삼아 실적은 우상향을 기록 중이다. 영업이익은 2022년 249억원, 2023년엔 335억원, 지난해 359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엔 영업이익 265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도 준수하다. 1분기 기준 18.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경쟁사를 압도했다. 하지만 2분기에 비용이 증가하면서 상반기 기준으로는 13.5%로 후퇴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한화엔진은 7.9%, HD현대마린엔진은 1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오지훈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7일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88억원으로 컨센서스를 하회했으나, 이는 하반기 탱크 인도 수 증가를 대비한 재고자산 매입 비용 증가가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면서 "하반기 가파른 실적 개선을 전망하고, 하반기를 바라보며 매수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가파른 주가 상승…증권가 "더 오른다"
세진중공업 주가는 올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4월 6420원까지 떨어지며 저점을 기록했으나, 이후 조선업 전반에 훈풍이 불자 수직 상승했다. 5월 21일 29.91%가 오른 뒤에도 우상향을 그리며 1일 1만586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올해 저점 대비 147% 올랐다.
가파른 상승에도 증권가에선 세진중공업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올려 잡았다. 오 연구원은 LPG탱크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들어 목표주가를 2만1000원으로 올려 잡았다. 세진중공업은 탱크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베트남 조선소를 2027년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오 연구원은 "고객사가 기업을 인수할 정도로 탱크가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2027년 세진중공업의 연간 40척 탱크 인도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2027년 이후로는 현대가 입찰 참여 중인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의 하부구조물 물량 또한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세진중공업의 목표주가를 1만8000원으로 제시했다. 엄 연구원은 "앞서 미국 시장 확대에 따라 조선업체들의 목표배수를 상향 조정했으며, 세진중공업의 목표배수도 기존 4배에서 4.5배로 상향조정한다"면서 "원청 조선업체의 수주량 증대는 협력업체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군함이나 군함 선체, 주요 구성품을 해외에서 건조할 수 없다고 규정한 미국의 '번스-톨레프슨법'의 우회 수혜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최근 미국은 '번스-톨레프슨법'을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등을 통해 자국 군함을 한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터닝밸류리서치는 보고서를 통해 "LPG 운반선 시장에서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점유율이 글로벌 약 50%에 가깝게 올라왔다"면서 "이 두 회사에 데크하우스와 가스탱크를 세진중공업이 독점 납품하는 중이라 글로벌 1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번스-틀레프슨법'을 우회하는 방안이 구체화되면 미국 군함을 한국에서 건조하게 되며, 이에 따른 수혜를 동사가 받게 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조선 섹터 전반에 기대감"
증권가는 한·미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따라 조선업 전반에 훈풍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협업·진출 계획 대부분은 현지 업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초기 단계다. 프로젝트 수혜 등 영향을 수치화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점이 조선업 전반에 활기를 넣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불확실성을 감안해도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며 "대부분 프로젝트가 한미 양국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 정부의 한국산 선박 구매 등 가외로 사업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마스가 프로젝트는 1500억달러라는 규모와 조선업 특성상 장기간의 설비 투자 및 인력 수급, 서플라이 체인 확보가 우선시돼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소멸되지 않을 최소 5년 이상의 상승 재료"라며 "마스가 효과가 소멸될 시점에는 과거 2차 슈퍼사이클 시기에 대규모 발주된 선대들의 친환경 및 노후선대 교체 수요가 만드는 상선사이클이 다시 도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