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영동교’로 유명한 화교 출신 가수 주현미는 10여년 전 갈대를 주제로 노래를 발표합니다.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이런 가사가 눈길을 끕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라 해도 바람에 꺾어지진 않는답니다…아픈 마음 서로 달래 주어요,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건 당신의 마음, 당신의 사랑 그것이래요.’
대법원 전경. 대법원 제공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살얼음판 같은 ‘협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혹은 이미 깨져버린 얼음판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양새입니다. 경기도는 5일 김진경 도의회 의장이 직권 공포한 ‘경기도 조정교부금 배분 조례 일부개정 조례’에 대해 대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개정 조례는 도지사가 특별조정교부금(특조금)을 상·하반기 중 각각 1회 이상 배분하고 하반기 배분은 11월까지 마치는 내용입니다.
다툼의 대상이 된 특조금은 시·군의 재정 격차 해소와 균형 재정을 위해 도지사 재량으로 지원하는 돈입니다. 도의회는 특조금 배분 시기를 구체화해 시·군 재정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야 도의회 대표들과 대화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운데). 반면 도는 지방재정법과 지방자치법에 따른 도지사의 특조금 배분 및 예산집행권을 침해하는 조례라고 반박했고 대법원은 구체적 판단 전까지의 경기도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둘러싼 속내는 복잡합니다. 도의회가 지급 시기를 못 박은 건 연말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도 집행부가 ‘특조금 카드’를 활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돕니다. 도의회가 핵심 사업의 발목을 잡더라도, 도 집행부가 특조금을 무기로 반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여기에 도의 반복된 재의(再議) 요구가 도의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 도 집행부 “배분 시기 특정해 도지사 예산집행권 침해” 제소
앞서 도의회는 지난해 12월 배분 시기 외에 배분 계획까지 도의회에 사전 보고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마련해 도 집행부를 압박했습니다. 이후 사전 보고를 삭제한 개정안이 수정 발의돼 지난 7월 본회의 의결을 마쳤죠. 도 집행부가 재의 요구로 맞서면서 도의회 역시 지난달 19일 재의결에 나섰습니다.
4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여야정협치위원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경 경기도의장, 최종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고영인 경기도 경제부지사, 백현종 국민의힘 대표의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경기도 제공 재석의원 100명 중 찬성 73명, 반대 21명, 기권 6명으로 통과됐습니다. 이에 도가 재의결 조례를 공포하지 않고 버티자 김진경 도의회 의장은 지난달 2일 직권으로 이를 공포했죠. 경기도는 개정 조례가 특조금 배분 시기를 특정해 도지사의 배분 권한과 예산집행권을 침해한다며 곧바로 대법원에 재의결 무효확인 청구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습니다.
민선 8기 들어 조례를 두고 의장 직권 공포와 대법원 제소가 이뤄진 건 처음입니다.
도의회는 전날에도 ‘공동주택 리모델링 환경평가 면제’ 조례안을 재의결하며 도 집행부를 압박했습니다.
4일 열린 정례회 본회의에선 도지사가 재의를 요구한 경기도 환경영향평가 조례 전부개정 조례안(공동주택 리모델링 환경평가 면제 포함)이 다시 통과됐습니다. 재석의원 107명 중 찬성 81명, 반대 17명, 기권 9명이었습니다.
개정 조례안은 연면적 10만㎡ 이상 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할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고, 조례 시행 전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된 사업에도 해당 규정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연면적 10만㎡ 이상 공동주택은 20평대 아파트 1700가구가 들어서는 대규모 단지입니다.
경기도는 주민 환경권·공익을 침해한다며 반발했죠. 다시 대법원 제소도 검토 중입니다. 도는 재의 요구서에서 “탄소중립 정책에 역행하는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경기도의회 전경. ◆ ‘ITS 뇌물수수 의혹’ 전·현직 도의원 8명 檢 송치…특조금 여진 재의결 조례에 대해 도지사가 이송 5일 이내에 공포하지 않을 경우 도의회 의장은 직권 공포할 수 있습니다. 도지사는 20일 이내에 대법원 제소가 가능하죠. 또다시 무효확인 청구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이 반복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경기도의 두 정치 주체가 늘 삐걱거리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정치는 복잡한 것인가 봅니다.
도의회가 조례안 재의결에 나선 4일 경기도와 도의회는 여야정협치위원회 첫 전체회의를 열고 내년 4000억원대 협치예산 운용과 특조금 배분 개선 방안 협의에 나섰습니다.
여야정협치위에는 도지사·경제부지사 등 도 집행부와 의장·양당 대표의원·총괄수석부대표·정책위원장 등 도의회 핵심 인사들이 모두 참여합니다.
이들은 서민경제 회복, 복지환경 조성, 교통복지 강화, 혁신산업 육성, 재난 및 기후위기 대응 등 5개 분야에서 협치예산을 운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양측이 충돌한 특조금 배분에 대한 개선 방안 역시 탁자 위에 오릅니다.
경기도의회 임시회. 경기도의회 제공 사실 협치위는 2023년 9월 출범했습니다. 지난 2년여간 유명무실한 상태였죠. 지난 8월 김 지사와 김 의장 등이 협약서에 서명하며 활동을 겨우 재개한 상태입니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도와 도의회의 갈등은 앞으로도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거액의 특조금 청탁’을 놓고 잇따라 재판에 넘겨지거나 검찰에 송치된 도의원들에 관한 신병 처리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도의원은 3명, 불구속 송치된 현직 도의원은 5명입니다. 해당 의원들의 당적은 여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간담회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해당 의원들에 관한 재판·수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사당국이 속도전에 나섰다는 뜻입니다. ‘특조금 파문’은 이미 내년 지방선거 당락에 영향을 미칠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상태입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