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혜진 기자 “마운드에 올랐을 때, 기대가 되는 투수가 되고 싶어요.” 31경기. 누군가에겐 평범한 기록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우완 투수 윤성빈(롯데)에겐 다르다. ‘희망’을 의미한다.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다. 그토록 기다렸던 1군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던졌다. 최고 160㎞에 달하는 강속구가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윤성빈은 “그간의 노력들이 조금이나마 보답을 받은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노력하면,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떡잎부터 남달랐다. 고교 2학년 때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됐을 정도. 미국 메이저리그(MLB)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다. 2017년 1차 지명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윤성빈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았다. 2018시즌 18경기에 출전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최근 5년간(2019~2024시즌)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어느 순간 ‘특급 유망주’ 대신 ‘아픈 손가락’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윤성빈은 “처음엔 신경이 쓰였는데 6~7년 들으니 다 지나가더라”고 말했다.
사진=롯데자이언츠 제공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차근차근 일어설 준비를 했다. 핵심은 자신의 것을 찾는 것이었다. 윤성빈은 “나만큼 투구 폼을 많이 바꾼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안에 또 다른 윤성빈이 여럿 있었다”고 웃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헤맸던 시간은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밑거름이 됐다. 김상진, 문동환 코치 등과 최적의 투구 폼을 찾아갔다. 윤성빈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고자 했다.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게 있더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처럼 화려한 복귀, 윤성빈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5월20일 부산 LG전이었다. 선발로 나섰다. 지난해 7월30일 인천 SSG전(1이닝 5실점) 이후 첫 1군 등판이다. 시작과 동시에 156~7㎞ 강한 공을 뿌리며 시선을 압도했다. 문제는 제구였다. 볼넷 6개와 몸에 맞는 볼 1개를 포함, 1이닝 9실점으로 물러났다. 윤성빈은 당시를 떠올리며 “마운드서 진짜 많은 생각이 들더라. ‘이거 그만해야 하나’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사진=롯데자이언츠 제공 전화위복. 벼랑 끝에서 가능성을 마주했다. 퓨처스(2군)로 내려간 윤성빈은 불펜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닝을 짧게 가져가면서 윤성빈표 직구는 더욱 강력해졌다. 조금씩 커맨드가 잡혔다. 한 달 만에 다시 1군 무대에 선 윤성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12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표정에서부터 한층 자신감이 엿보였다. 윤성빈은 “감독님께서 강한 타자들과 많이 상대하게 해주셨다. 이기든 지든 힘 대 힘으로 붙으려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돌아가는 시계. 기다린 것은 윤성빈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윤성빈이 마운드에 설 때마다 유독 큰 함성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몇몇 이들은 ‘너 올라갈 때처럼 응원해주면 나도 구속 더 올라갈 것 같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윤성빈은 “처음엔 긴장해서 몰랐는데 점점 팬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부산 출신이라 팬 분들도 나도 더 각별하다. 그간의 스토리를 잘 알기에 더 응원해주신 듯하다”고 활짝 웃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마음을 더욱 단단히 조여 맨다. 시즌을 마친 뒤 2~3일 정도 쉰 뒤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비시즌 목표는 간결하다. 몸 상태를 더 끌어올리는 것, 현재 폼을 유지하는 것, 변화구 하나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마인드 자체를 바꿨다. 윤성빈은 “1이닝 9실점도 해봤는데,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보다 더 못 던질 순 없지 않나”라며 “불안하지 않는 투수가 되고 싶다. 기대가 되는, 계산이 서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이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