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쿠팡 새벽 배송을 하다 사고로 숨진 30대 택배 노동자가 극심한 업무강도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는 12일 고인의 장례식장 앞에서 ‘제주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 1차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노동 조건은 쿠팡 새벽 배송을 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다”고 밝혔다.
새벽 택배 트럭 사고 현장.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제공 택배노조는 제주서 숨진 30대 택배노동자 A씨의 휴대전화에서 쿠팡 택배기사들이 사용하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조사한 결과 고인은 평소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30분까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1시간 30분 근무했으며, 주 6일간 평균 노동시간은 69시간(야간근무 30% 할증 시 83.4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A씨가 숨지기 전인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근무한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노조는 A씨의 주 평균 노동시간인 ‘83.4시간’은 지난해 쿠팡 심야 로켓배송 업무를 해오다 숨져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고(故) 정슬기씨가 숨지기 전 4주 동안의 주 평균 노동시간 ‘74시간 24분’(야간근무 30% 할증 시간) 보다 많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재 인정 기준상 야간근무의 경우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큰 점을 고려해 업무시간 산출시 30%의 가중치를 둔다.
노조는 “A씨는 하루 2차 반복배송, 고중량물을 취급하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했다. 또한 11월 5∼7일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굉장히 힘든 정신적 고통 속에 8일 하루만 휴무하고 9일부터 출근해 사고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A씨는 매우 심각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추가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노동부 등의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될 경우 적극적으로 협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0일 오전 2시 10분쯤 제주시 오라2동 한 도로에서 쿠팡 협력업체 소속 특수고용직노동자 30대 택배 노동자인 A씨가 몰던 1t 트럭이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고, 중상을 입은 A씨는 당일 오후 3시 10분쯤 사망했다.
사고는 A씨가 1차 배송을 마치고 2차 배송을 위해 새로운 배송물량을 받으러 물류센터로 복귀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8살과 6살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최근 부친상을 치른 뒤 하루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경찰은 A씨가 새벽배송 업무 중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날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는 쿠팡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과로사 부르는 심야배송을 제한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쿠팡의 새벽배송 시스템은 노동자를 갈아 넣는 야간노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벽배송을 위해 분류작업을 하고, 물품을 싣고 배송하는 노동이 야간에 이뤄진다”며 “야간노동은 2012년 세계보건기구가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할 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쿠팡 새벽배송과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다수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라며 “고용이 불안하면 아프거나 과로상태에서도 쉴 수 없는 구조인데 이를 두고 일할 자유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쿠팡에 △노동실태 전반 공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조사 기구 설치 △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유족의 생활 보장 대책 마련을, 고용노동부에는 △새벽배송 등 노동실태 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반 조치 등을 촉구했다.
정의당과 노동당 제주도당은 성명을 통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새벽 배송을 하던 한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제주도정은 쿠팡 제주물류센터의 새벽 배송과 물류센터 전반에 대한 노동환경 전수조사, 개선 명령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분향소를 찾아 추모하고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오 지사는 “안타까운 사고에 대해 매우 가슴 아프다”며 “특히 부친 장례를 치른 뒤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노동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방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유가족에 대한 긴급복지 지원을 신속하게 진행할 방침이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