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잘 안 팔리자 계약도 취소…LG엔솔, 열흘 새 13조 원 계약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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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잘 안 팔리자 계약도 취소…LG엔솔, 열흘 새 13조 원 계약 날아갔다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ESS로 이동…배터리 판도 변화 신호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주 46시리즈 원통형 및 리튬인산철(LFP)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생산 공장 조감도. 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 두 건, 총 13조5000억 원 규모를 잇따라 해지했다. 전기차 수요가 기대만큼 늘지 않는 이른바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이 장기화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사업에 속도 조절에 나선 영향이다.

2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7일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맺었던 9조6000억 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매출의 약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초 양사는 두 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나는 2026년부터 5년간 34기가와트시(GWh), 다른 하나는 2027년부터 6년간 75GWh의 배터리를 공급하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포드는 2027년부터 공급 예정이던 75GWh 계약을 취소했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34GWh 계약은 유지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전기차 계획을 줄이면서 배터리 주문도 절반 이상 취소한 것”이다.

포드의 결정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 환경 변화가 있다. 미국에서 전기차 구매 시 적용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축소·폐지되면서, 전기차 판매가 둔화됐다. 이에 포드는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 내연기관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수익성이 더 높은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제로 포드는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중단했고, SK온과 추진하던 배터리 합작 사업도 최근 접었다.

여기에 더해 LG에너지솔루션은 26일, 미국 배터리팩 제조사 FBPS와 맺은 약 4조 원 규모의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도 해지했다고 밝혔다. FBPS가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사업 자체에서 철수하면서 계약이 무산됐다.

이로써 LG에너지솔루션은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총 13조5000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잃은 셈이다. 이는 회사의 지난해 연매출(약 25조6000억 원)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다만 회사 측은 당장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기존 생산 라인에서 만들 수 있는 물량이어서 다른 고객사로 전환 판매가 가능하다”며 “포드와의 중장기 협력 관계도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당분간 빠르게 회복되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투자 속도를 늦추면서, 배터리 업체들의 신규 수주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배터리 업체들이 전기차 외에 ESS 등 다른 시장으로 사업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는 계약 축소나 취소 사례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며 “지금은 배터리 업체들도 ‘전기차만 바라보던 시대’에서 벗어나야 하는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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