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가장 매서운 한파가 찾아온 26일 저녁,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 가수 성시경이 360도 개방형 무대 정중앙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 25주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리였으나, 그를 향한 시선에는 축하와 애틋함이 섞여 있었다.
관객들은 성시경이 겪은 시련을 알고 있었다. 10년을 함께한 전 매니저의 횡령과 배신. 그는 처벌 대신 선처를 택하며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을까. 성시경은 자신의 25년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된 시절부터 지금까지. 얼굴은 당시보다 살이 붙었고, 목소리는 조금 변했다. 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여러분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까 봐 두려웠던 밤들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반주가 시작되자 두려움은 사라진 듯했다. '처음처럼', '그리움', '우리 제법 잘 어울려요', '좋을 텐데', '차마', '거리에서', '너에게', '희재' 등 히트곡들을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절제된 감성으로 불렀다. 관객들은 그때마다 저마다의 추억을 곱씹었다. 그가 왜 이 시대 발라더인지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정점은 '거리에서'와 '희재' 무대였다. 전주가 흐르자 객석 곳곳에서 짧은 탄식과도 같은 환호가 터졌다. 이 곡들은 누군가에게는 시린 겨울날의 이별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고된 퇴근길의 위로였다. 관객들은 성시경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들의 청춘을 되돌아봤다. 순간 공연장은 서로 다른 추억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개개인의 기억들이 음악으로 꿰어졌다.
성시경은 이 연결고리 역할을 오래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조용필과 나훈아 선배님처럼 나이가 들어도 무대에서 품격을 유지하고 싶다"며 "50대에도 지금의 목소리와 감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단순한 자기 계발의 선언이 아니다. '추억의 유통기한'을 연장해주겠다는 위로다. 아티스트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팬들이 함께 지켜보며, 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공연 말미, 그는 데뷔곡 '내게 오는 길'을 부르며 객석으로 내려갔다. 팬들과 눈을 맞추며 다음 25년을 기약했다. "결국 제가 돌아갈 곳은 무대이고, 저를 살게 하는 건 여러분의 박수와 응원"이라는 고백. 공연장은 눈물과 환호가 섞인 온기로 가득 찼다.
25년 전 수줍게 데뷔했던 청년은 어느덧 대중과 함께 나이 든 장인이 되어 있었다. 그가 약속한 '50대의 목소리'는 그곳에 모인 모두에게 내일을 살아갈 힘이자, 사라지지 않을 기억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배신 앞에서도 침묵 대신 노래를 택한 성시경은, 그렇게 음악이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는지를 보여주며 무대를 내려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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