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를 타고’(1952)에서 진 켈리가 우산을 들고 빗속을 누비며 춤추는 장면, ‘더티 댄싱’(1987) 속 패트릭 스웨이지와 제니퍼 그레이의 우아한 리프트, ‘펄프 픽션’(1994)에서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 트위스트 대결, ‘라라랜드’(2016)에서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 LA 야경을 배경으로 중력을 거스르듯 춤추는 장면…. 영화사에는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한 수많은 댄스 장면이 길이 남아있다. 24일 개봉한 영화 ‘척의 일생’(연출 마이크 플래너건)에도 그에 못지않은 댄스 장면이 등장한다. 고전적인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회계사 척 크란츠(톰 히들스턴)는 길을 걷다 거리 공연하는 드러머의 연주를 듣고 즉흥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나둘 관객이 모이고,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척은 구경하던 한 여성에게 함께 춤추자고 손짓한다. 좀 전에 남자친구에게 실연당해 마음이 심란했던 여성은 페어 댄스에 응하며 아름다운 호흡을 맞춘다. 이들 사이에는 심장과 영혼이 해방되는 듯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영화는 스티븐 킹의 소설집 ‘피가 흐르는 곳에’(2020)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3막 구조로, 3막부터 시작해 2막, 1막으로 이어지는 비연대기적 서사다. 영화의 도입부인 3막에서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화산 폭발, 해일, 산불까지 끝없이 밀려드는 재난 속에서 종말론적 공포가 번진다. 세상은 멈추고 인터넷은 끊기며,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사랑하는 이를 찾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거리 광고와 TV, 라디오에는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의문의 광고가 도배된다. 척에 대한 헌사는 심지어 주택가 창문 속 얼굴로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척’이라는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영화 ‘척의 일생’ 속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 제공 2막과 1막에서 관객은 실제로 척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영화 도입부에서 세상의 종말처럼 그려졌던 장면이 사실은 뇌종양과 싸우는 39세 남성 척의 의식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어린 척이 학교에서 배운 학교에서 배운 월트 휘트먼의 시 속 “나는 크다, 내 안에는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I am large, I contain multitudes)”라는 구절처럼, 누구나 온 세상을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전한다. 핵심 구조가 그러할 뿐, 영화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한다. 장르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드라마이자 SF이며, 때로는 공포물의 분위기까지 담고 있다. 이 영화 수입·배급사인 워터홀컴퍼니는 작품의 장르를 ‘라이프타임 감동 드라마’로 소개했다. 특히 2막 ‘성인 척’의 길거리 댄스 장면, 1막 ‘유년 척’의 풋풋한 댄스 장면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선택이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